쿤밍에 가는 여행자가 열이면 열 다 들르는 곳이 바로 석림(石林[shílín] 스린)이 아닐까? 도시 여행보다 자연 여행을 더 좋아하는 내게 석림은 필수코스이다.
다행스럽게도 석림은 쿤밍에서 접근성이 좋다. 한국의 사진 찍는 동호회에서 단체로 차를 대절해서나 갈까 개별 여행으로는 잘 가지 않는 '울트라 하드(hard) 여행지'인 위안머우 토림(元謨土林 원모토림)과 웬양 다락논(元阳梯田 원양제전 )에 단련된 뒤라 쿤밍에서 석림 가는 길은 교외 소풍 마냥 말랑말랑하게 느껴졌다.
쿤밍 동부터미널에서 석림까지 버스로 2시간이 걸리고 석림 매표소 앞에 내려준다. 입장료 외에 전동차 값을 내고 전동차로 관광지까지 들어갔다. 좀 개발해놓고 관광객이 몰리는 중국의 유명 관광지는 죄다 이런 식이다. 입장료를 이중으로 내는 기분이 들어 씁쓸했다.
석림에 들어서니 이름 그대로 돌 숲, 그 자체다. 자연석을 중심으로 거대하게 조성된 정원처럼 보였다. 대석림과 소석림으로 나누어져 있다. 석림 안에서는 발 닿는대로 가면 된다. 길을 잃어도 관계없다. 어디로든 길이 또 나 있으니. 과연 카르스트 지질 공원답다. 삐죽삐죽 솟은 석회암 기둥 사이사이에서 무슨 이야기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전설에 따르면, 신이 산을 부수어 은밀한 곳을 찾는 연인들을 위해 미로를 만들어 놓은 곳이라고 한다. 정말 숨기에는 안. 성. 마. 춤의 기묘하고도 신비로운 풍경이다.
쿤밍의 석림은 유네스코 자연유산(2007, 2014)인 중국 남방 카르스트의 대표 주자이다. 카르스트(Karst)는 슬로베니아 크라스(Kras) 지역에 대한 독일어 명칭에서 유래한 용어로 크라스 지역과 같이 석회암이 녹고 침식당해 만들어진 지형을 통칭한다. 이곳 석림은 고생대 페름기인 2억 7천만 년 전 바다 밑 석회암 지역이었다고 한다. 이후 융기하고 침식당해 뾰족뾰족한 침 모양으로 형성되었다고 해서 침상(針狀) 카르스트(Pinnacle Karst)로 분류된다. 구이린(계림 桂林)이나 완펑린(만봉림 万峰林)과 같이 키세스 초콜릿을 엎어 놓은 모양의 봉우리 형태로 남은 것은 탑 카르스트(Tower Karst)이다. 베트남의 땀꼭, 닌빈, 하롱베이도 탑 카르스트에 해당한다.
중국 남방 카르스트의 여기저기를 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이곳은 광시의 구이린(계림)과 더불어 중국 남방 카르스트의 쌍벽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구이린은 ‘하늘 아래 아름다운 풍경의 으뜸(桂林山水甲天下 계림산수갑천하)’으로 칭송되고, 이곳 석림은 ‘하늘 아래 기괴한 풍경의 으뜸(天下第一寄觀 천하제일기관)’이란 수식어가 따른다.
석림을 둘러보고 쿤밍으로 돌아가려고 매표소로 다시 왔다. 그런데 웬일? 석림에서 바로 내고석림(乃古石林 나이구스린)까지 가는 셔틀버스편이 있다는 안내를 보았다. 그걸 보자마자 쿤밍으로 돌아가려던 차표를 무르고 석림에서 내고석림행 차에 올라탔다. 횡재한 기분이다. 내고석림이 좋다는 글을 언젠가 보았지만 현지 교통편을 몰라 갈 엄두를 못 내고 대소석림만 보고 쿤밍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구입한 석림표에 내고석림까지 포함이라니 더 기분이 좋았다.
석림에서 20분쯤 달리니 내고석림에 도착했다. 승객은 여자 여행자랑 나 단둘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 사람이었다. 내고석림에 우리를 제외하곤 사람이 거의 없었고 자연스레 같이 움직이게 되었다. 두 시간 남짓의 동행이었지만 반가웠다. 그동안 중국 시골로만 다니느라 한국 사람 만날 일이 없었는데 모국어를 해 보는 게 얼마만인가 싶었다.
대소석림이 단정히 꾸며놓은 공원 같다면 내고석림은 야생 그대로였고 거칠었다. 그래서인지 대소석림은 여성적, 내고석림은 남성적 분위기가 났다. 눈앞에 펼쳐진 돌 숲의 파노라마를 보며 석림 한가운데 서 있으니 내가 무슨 외계의 별에 불시착해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대소석림을 보러 왔다가 덤으로 본 내고석림이 더 맘에 들었다.
대소석림과 내고석림 구경을 끝내고 쿤밍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도 차창밖으로 군데군데 석림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너른 평지인 이 지역 곳곳에 수직으로 솟은 석림이 산재해 있었다. 이 벌판에 어찌 이 돌들만 숱한 세월과 침식의 과정을 견디고 남았을까? 굳이 과학만이 답인가. 몸 숨길 나무 한그루 없는 이 허허벌판에 누군가는 숨을 곳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신이 만든 연인들의 미로’란 표현이 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