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과 가면 - 존재의 감각 시리즈

유화 : 색을 쓰는 연습

by 나소



그 애의 표정은 유화 같다.

저 멀리서 바라본 그 아이는

짙은 얼굴을 하고

또 다른 얼굴로

짙은 얼굴을 지워버린다.


덮여버린 층 사이로

사라지지 않은 잔여물만 남아

색이 겹겹이 쌓인다.


그 애는

무채색을 자주 만들어낸다.

얼룩진 얼굴엔

옅은 미소로

너무 밝아 희미해진 색엔

무게를 담는다.


항상 무채색으로 돌아오려는

회귀본능


어떤 게 원래의 색이었나.

바탕은 무슨 색이었나.

헷갈릴 만큼

순식간에 변한다.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한 채

그저 시시각각

변하는 얼굴에

감탄을 남긴다.


아직

완성된 그림은 아니다.

나는 알 수 있다.


그 애는 아직

어떤 그림을 그릴지

정하지 않았다.

그저 캔버스를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언젠가

그 애가 붉은색 물감 위에

짙은 어둠을 얹는 걸 보았다.


그것은

인위적인 무채색이 아니었다.

캔버스 안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다행이었다.


그 애는 자신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나 보다.



온갖 색들로 더럽혀진

무채색이 아니라,

온갖 연습들로

색을 쓰는 방법을

익힌 것을 알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