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과 가면 - 존재의 감각 시리즈

비상 : 꿈은 없다. 자세만 있을 뿐이다.

by 나소


비상과 낙하를

구분하지 못하는 나에게,

중력은 두 동작이

같은 말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꿈이 사라진 자리에서,

나는 자세만 남긴 채 걸어간다.





왜.

왜라는 질문을

처음 만든 사람은 누구였을까.

왜라는 그 한 글자 때문에

오늘도 수백 명이 낙하한다.


왜는 곧 어떻게를 만들고,

어떻게는 날아오름을 꿈꾸게 하다가

비상하듯 떨어지게 한다.


비상하는 사람은

그것을 버리고 멀리 떠나고,

낙하하는 사람은

그것을 껴안고 추락한다.


그러면 폭탄이 없어지나.

폭탄의 의미가 ‘두려움’으로 바뀔 뿐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적어도 비상하는 사람은

거기서 멀리 떨어질 수 있으니,

모두가 비상을 동경할 뿐이다.


나는 결말까지

기다릴 성질머리가 안 돼서

늘 비상하는 것과 낙하하는

첫 번째 동작만 보고 착각을 해버린다.

그래서 낙하의 동작을 할 때면

주위 사람들이 혐오로 바라보고,

비상의 동작을 취하면

대견스럽고 동경하는 눈빛을 보낸다.

보내지 말지어다.

난 둘의 동작을 구분할 수 없으니


그러다 어느 날,

끝 동작을 보았다.


비상은 떨어지듯이

쉽게 중력을 역행했고,

비상하기까지의

무용담을 전하기 위해

그들은 다시 돌아왔다.


비상 자세를 알아내기까지의

고됨이 박수받고,

입을 ‘오’, ‘와’ 벌린

비상 꿈나무들이

듣고 있었다.


후에 본 한 낙하하는 이의 끝동작.

그 후로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없었다.

그곳으로 가서

자세를 연습하러

매일 오던 꿈나무들도 사라졌다.

낙하한 그는 어디에 갔을까.

이곳은 이제 아무도 없다.

나만 남았다.


꿈은 없다.

자세만 있을 뿐이다.


비상 후에 벌어질 박수갈채,

무용담을 듣는 꿈나무들은 없었다.

나와 자세만 있었다.


비상과 낙하만 있었다.

그게 나의 욕망이자 안전이다.

나에게는 평온이다.

둘의 동작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게

나의 자랑이다.


고요한 그곳에서

비상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난다.

낙하의 무거움에서 벗어난다.

중력이 둘을 연결해 주었고,

그제야 알았다.

둘은 같은 말인걸

나는 모두가 사라진 이곳에서 얻었다.


자세를 연습하고, 나는 걸어간다.

낙하하고 사라져 버리고 싶다가도

악담과 소문 역시

무용담처럼 오래갈까 싶어서

나는 걸어간다.


그러다가

내일은 낙하자세를 할 것이다.

아니, 비상이었던가?


물으면서

나는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