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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 Jun 10. 2023

뭘 잘못한 거지?

불꽃이 되어줄게

오랜만에 새벽 2시경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영국은 저녁 6시로 저녁을 먹고 있다고 했다.


"다른 나라 아이들은 같이 어울려서 밥을 먹고 있는데 나는 혼자 먹고 있어"

"응"

"응이 뭐야?"

"이미 알고 있는 거여서..."

이제는 뭐라고 말을 하는 자체가 무섭다. 어느 포인트에서 화를 낼지 몰라 말을 줄인다.

하지만 뭔가 싸하다.


"다른 아이들은 친구가 있는데 나는 없어"

"그러게 맘에 맞는 친구 한 명만 있으면 되는데 없네... 속상하지?"

예전 같으면, 친구 없으면 어때, 너는 공부를 하러 간 거니까 거기에 충실하면 되지. 친구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는 아이들도 많으니까 뭐 중요한 것도 아니잖아라고 했을 텐데, 

이제는 해결을 하려고 하지 말고 아이의 감정에 공감을 해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고 난 이후에는 많이 노력한다.  

 

"나는 항상 혼자야. 밥을 먹을 때도 혼자고 기숙사에서도 혼자고"

"그렇구나, 새로 온 한국애들은 학년이 다르고... 친구가 있으면 더 잘 지낼 텐데"

"엄마는 혼자인적이 없었잖아!"라는 말을 하며 흐느끼기 시작한다.

"아니야, 엄마도 대학교 때는 단짝 친구가 없어서 힘들었어. 게다가 남자친구들과 우르르 어울려 다니느라 여러 가지로 힘든 점이 많았어(남자 친구가 있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집에 오면 가족들이 있었잖아"

"매일 늦게 들어와 가족들 얼굴도 잘 못 봤고, 졸업 후 취직해서는 오랫동안 혼자 살아서 외로울 때가 많았어. 그리고 외국에 있는 엄마 친구딸도 맘에 맞는 친구가 없어서 무척 외로워서 힘들어하고 있대"

"다른 사람얘기를 나에게 왜 해, 도대체! 의도가 뭐야?"

"이런저런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고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위로받으라고 하는 소리지"

"하나도 위로가 안돼! 나에게 왜 이러는 거야? 남 얘기는 왜 하냐고! 엄마에게 나중에 똑 같이 할 거야"

하고 전화를 뚝 끊어버린다. 


잠시 멍했다. 뭘 잘못한 거지?

아이의 감정에 공감해 주었고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힘듦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외롭지 않다는 말을 해주려고 한 것뿐인데. 그냥 '힘들었구나, 힘들구나'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어야 하나? 작년에도 친구가 없어 힘들다는 얘기를 했었고 새롭게 일어난 사실도 아닌데 왜 지금 다시 갑자기 얘기하는 거지?

물론 아직도 해소가 되지 않았고 친구가 없어서 힘들어서 투정 부린다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혼자 있는 게 외로우면 친구를 사귀면 되고 사귈만한 친구가 없으면 혼자 있는 거에 익숙해져야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여전히 그러고 있으면 어떻게 하자는 거지? 계속 힘들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 학교에서의 생활도 이제는 3주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전에 같으면 이런 나의 속 마음을 아이에게 전달하고 다르게 생각해 보라고 종용했겠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갑자기 외로웠나 보다. 본인의 처지가 서러웠나 보다. 문득 감정이 복받쳤나 보다. 

좀 진정되길 기다렸다가 전화를 걸었다. 안 받는다.

또 걸었다. 안 받는다.

엄마의 마음은 그게 아니라고, 누구를 원망하는 상태에서 잠들지 말라고 마음을 풀어주려고 하는데도 나의 마음은 아이에게 닿지 않는다. 

맘이 너무 아프다고, 너의 행복을 위해서는 뭐라도 다 해줄 텐데...라고 카톡을 남겼다.

진심이다. 뭐라도 다 해주고 싶고 그럴 자세가 되어 있는데 아이는 나를 밀어낸다. 

아직 외부의 것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된 거다. 


아이는 지금 힘든 암흑 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다. 어디가 출구인지 알 수 없어 몸부림치고 있다.

겨우 한 줄기 빛을 발견하고 다가왔는데 금방 꺼져버리고 더 어두운 암흑 속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느끼는 것 같다. 

그 불빛이 금방 사라져 버렸지만 또다시 불꽃은 피어난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속에서 빠져나올 것이며 조그만 불빛이 커다란 횃불이 되어 앞을 밝힐 거라는 희망을 줘야 한다. 멈추지 말고 계속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줘야 한다. 

불꽃이 되어주리라. 나는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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