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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 Oct 27. 2023

Oxford 시험 치는 날

2023년 10월 20일


외국에서 공부를 해서인지 입시 부모로서의 긴장과 수험생 엄마의 괴로움은 전혀 없다. 한국 대학을 준비하고 있었으면 차고 넘치는 정보의 홍수에 정형화된 입시제도 틀 안에서 사소한 정보에 의해 많이 흔들렸을 것 같고 남들과 비교해 뭔가 놓친 것 같으면 입시생을 둔 부모로서 안절부절못했을 것 같다. 근데 이건 뭐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글로벌이다 보니 모르는 게 태반이고 알려고 해도 찾다가 볼일다보게 되니 포기를 하게 된 건지 무지해서 느낌조차 없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웬만한 상황에는 연연하지 않게 되고 오히혀 좀 대담해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또 다른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오늘은 Oxford PAT시험을 치는 날이다. 그래도 중요한 시험인데 혼자 택시 타고 가라고 하기에 좀 그래서 데려다주고 출근하기로 했다.


미리 일어나 이것 준비하고 있는데 아이가 일어났길래 잘 잤냐고 물었다. 공부 열심히 했냐, 시험에 자신 있냐는 말은 꺼내지도 않는다. 그냥 의례히 컨디션이 어떤지 정도 물었는데 시험 치는데 잘 잤겠냐는 까칠한 답이 돌아온다. 헉, 이 반응은 뭐지? 원래 공부한다고 호들갑 떠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알아서 하겠지 하고 그다지 신경을 쓰지는 않았는데 시험이어서 잠을 잘 못 잤다니 의외다. 몇 번 인가 이번 시험을 잘 치는 것 말고는 Oxford에 갈 방법은 없다고 툭 던지는 말로 하긴 했는데 이토록 신경을 쓰는지는 몰랐다. Oxford에서 받아줄 가능성은 이미 희박하다는 건 다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고 단지 다시 미련이 남지 않도록 시험을 쳐본다고 생각한 나와는 온도 차가 있는 것 같다. 허긴 시험은 시험이니까. 저 나이 때는 더 중요하게 와닿을 테니까. 시험 치는 아이 신경 건드리지 말아야지 조심하며 조용히 운전한다.


금방 시험장에 도착했다. 그래도 일주일 전 컴퓨터 점검을 하기 위해 한번 와 본 곳이라 오는 길이 덜 낯설었다. 하지만 지난번에 아직 시스템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아 컴퓨터 체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이라 혹시 몰라 일찍 왔는데 센터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딸아이랑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한 남학생이 다가와 문 앞에서 이것저것 살피는 모양새가 그 역시 우리 같은 이방인인 것 같아 혹시 PAT시험 치러 왔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다행이다. 동지가 있다. 이 센터 역시 내부 학생들만 시험을 치는데 외부인들 몇 명은 받아서 시험만 치는 곳이라 우리 딸 혼자 외부인이 아닌 또 다른 학생이 있다는 사실에 별거 아니지만 안도감이 들었다. 그 사이 관계자분이 오셔서 어제 시험 칠 때 문제없이 잘 접속되어 시험을 쳤다는 말을 듣고 딸에게 노트북 확인하고 시험 잘 치라는 말을 남기고 회사로 향했다.


저녁이 되어 딸에게 시험 어땠냐고 물었다. 너무 떨려서 문제를 다 풀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떨릴 줄 알았으면 우황청심환이라도 먹고 가지 그랬어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왔는데 이미 의미가 없다는 걸 말하면서 깨달았다. 본인이 몰라서 못 푼 것보다 마음이 안정이 안 돼서 시험을 잘 못 쳤단다. 자기의 능력을 다 보여주지 못한 것이 속상하단다. 수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기만의 방법을 터득하는 수밖에 없는데... '네가 겪어야 하는 과정이고 그러면서 네가 성장해 가는 거야'라는 말을 하면서 아이에게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리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 한편에 안타까움이 몰려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가 살면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 순간이 얼마나 있었겠나? 단지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갈 뿐이지. 물론 간혹 뭔가는 있었겠지만 대부분 좀 더 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더 컸던 것 같다.


내가 저 나이 때는 어땠을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뭔가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고 속상하고 그랬었나? 그랬겠지? 지나고 나면 별일도 아닌데 그때는 별일이었겠지? 그래서 울기도 하고 잠도 못 자고 그랬겠지? 나도 그런 시기를 나도 다 겪고 지나왔겠지?


아이를 통해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자식을 키워봐야 어른이 된다고 하는 건가?

점점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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