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
1995년도 여름, 유럽으로 한 달 배낭여행을 갔었다. 영국 런던에서 노부부가 운영하는 B&B(Bed and Breakfast)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 시절 배낭여행으로 유럽을 가게 되면 물가가 싼 동유럽 몇 나라에서나 호텔에서 잘 수 있고, 대부분 나라에서는 유스호스텔, 아니면 이동하는 시간을 잘 맞추어 밤 기차로 숙박을 해결했었다. 영국은 그 당시에도 물가가 비싸기로 소문이 나서 아침을 제공해 주는 B&B를 선택했었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 간단한 영국식 Breakfast를 먹으며 주인 분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주인 할아버지가 나에게 당신이 쓰는 영어는 미국 영어라며 ‘아메리칸~’하며 안 좋은 감정을 나타냈었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교양 영어 1년, 모두 합쳐 7년 정도 영어 교육을 받으며 영국식 영어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나로서는 좀 어리둥절했었던 것 같다. 아니 미국식, 영국식 영어의 차이를 잘 몰랐었다. 지금은 발음과 단어로 그 차이를 확연히 구분할 수 있지만 그때는 정확하게 뭐가 다른지 잘 몰랐었고 단지 영국이란 나라는 물가도 비싸고 영어로 말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나에겐 너무나 먼 나라로 느껴졌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오랫동안 미국의 영향권(?)에 있었기에 미국 관련 정보가 훨씬 더 많았다. 미국으로 몇 차례 연수도 다녀왔고 아이랑도 여러 번 미국을 갔다 왔으며 주변에 미국 유학을 한 사람들도 많아 ‘유학’이라고 하면 당연히 ’ 미국'으로 보낸다고 생각을 했었다. 일반적으로 미국 대학을 가려면 일반적으로 SAT, TOEFL 등 성적도 좋아야 하지만 방과 후 클럽활동, 리더십 봉사활동, 스포츠 활동, 상장 및 수상내역 등 과외의 액티비티가 많아야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일단 명문 고등학교를 가면 관련 커리큘럼이 많고 학교에서 많은 부분을 관리해주기 때문에 명문 고등학교 출신들이 좋은 대학을 갈 확률이 높다고 한다. 우리 아이는 대학은 차치하고 일단 고등학교부터 어디로 갈지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2만 개가 넘는 미국의 고등학교 중에서 아이를 보낼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보딩 학교로 외국인 입학이 가능한 LA 근처 서부나 보스턴, 뉴욕 등의 동부부터 살펴보았다. 고등학교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에서 조건이 맞는 학교를 발견하면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입학 관련 사항을 살펴보았다. 유학원을 통하면 좀 더 쉽게 유학을 보낼 수는 있었겠지만 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싸고 유학원도 모든 학교를 다 알고 있지 않을 것이며 아이에 대해서는 내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 직접 알아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이왕 유학 가는 거 좀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여 좋은(?) 대학으로 갔으면 하는 부모의 사심이 들어가니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학교를 정하기가 힘들어졌다. 학교 리서치를 하는 과정에 문득 미국의 명문고등학교를 보내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유학을 가려고 준비한 것이 아니어서 영어로 말하는 것, 쓰는 것, 읽는 것 모두 익숙지 않은대다 공부할 과목도 너무 많아 영어로 그 모든 과정을 소화하기가 힘들 것 같았고 공부뿐 아니라 과외의 활동까지 많은 것을 준비하며 해나가야 하는데 내가 옆에서 도와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아이 혼자 감당하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큰 욕심을 버리고 학년을 낮춰 입학이 쉬운 학교를 알아보았으면 미국으로 가는 것도 가능한 일이었는데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실제로 우리 아이가 영국으로 가고 난 뒤 동갑내기 친한 친구의 딸은 한 학년 낮추어 미국으로 가서 상대적으로 여유 있게 공부를 하고 있다).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영국은 미국과 많이 달랐다. 영국은 대학을 가기 위한 시험인 A level 성적과 PS(Personal Statement), 외국인은 IELTS 영어 성적으로 대학에 지원할 수 있다. PS에는 미국처럼 광범위한 활동을 요구하기보다 지원하는 과와 관련된 활동 위주의 내용이 중요하여 우리 아이처럼 늦게 유학을 준비한 아이에게는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투자 가능한 입시제도였다. A level에서 공부해야 하는 과목도 대학에 지원하려는 과와 관련된 과목 3-5개 정도 정하는데 우리 아이는 엔지니어링 관련 과목인 Math, Further math, Physics, Chemistry 4과목을 정해서 공부하면 되었다. 대학마다 지원하기 위한 점수와 관련 과목이 조금씩 다르지만 어느 계통으로 전공할지만 정하고 나면 공부를 해 가면서 자신의 성적에 맞는 학교를 알아보고 지원하면 된다.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미국의 IT회사인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에서 한 번은 일해보고 싶어 한다. 우리 딸이 이공계 쪽 관심으로 엔지니어가 되겠다고 한 이후 미국 실리콘밸리 쪽의 큰 IT 회사에 취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국이라는 나라도 산업혁명이 일어난 나라답게 랜드로버, 재규어 등 고전 자동차 산업도 매우 발달되어 있고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가전 업체인 Dyson, 반도체 회사인 ARM 등 글로벌로 유명하고 좋은 기업들이 많이 있어 영국으로 대학을 가는 것도 또 다른 기회인 것 같았다.
배낭여행 때 느낀 영국 사람들의 자부심? 비싼 물가, 교과서에서 배운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옥스퍼드, 캠브리지라는 대학, 축구, 위스키의 나라 정도였던 영국에 대해 또 하나 유학이라는 단어를 추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