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걸 알면서도
왜 갑자기 우리 딸이 유학을 간다고 했을까?
학교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이 젤 재미있어 학창 시절이 너무 행복하다고 하는 아이가?
중학교 때 성적이 나쁘지 않아 고등학교 올라가서 공부 열심히 하면 대학은 무난히 갔을 것 같은데?
대한 민국이 세상에서 젤 살기 좋은 나라라며 자기는 꼭 우리나라에서 살거라 던 아이가?
말리던 엄마의 뜻에 순응하며 한 차례 마음을 접었다가 몇 달 뒤에 결국은 가야겠다고 한 이유는?
넓은 세상을 보고 느끼라고, 여행을 많이 다니며 다양한 나라를 보여줘 글로벌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나의 계획이 성공했다~~~ 고 하기엔 너무 갑작스럽게 간다고 해서 오히려 당황했다. 어릴 때 영어 캠프라도 가라고 하면 절대로 엄마 떨어져서 지낼 수 없다고 하여(초등학교 때 캠프를 보낸 적 있었는데 중간에 퇴소를 하였고 그때의 상황이나 감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며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아 다시는 본인이 먼저 가겠다고 나서지 않으면 절대로 보내지 않는다) 항상 나랑 같이 다니는 짧은 여행을 자주 갈 수밖에 없었다. 평생 옆에 붙어서 지지고 볶고 같이 살아야 되나 보다 하고 글로벌 인재(?)가 되는 건 포기를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3학년 2학기가 시작된 즈음 유학 갈까 하고 물어오던 아이가 결국엔 가겠다고 했다. 이미 해외로 보내는 건 포기한 데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성실하게 아이 뒷바라지하며 이때까지 엄마 역할 못한 걸 만회하는 기회를 삼으려 했던 터라 여러 가지 고민이 머리에 떠올랐다. 영어 공부도 제대로 한적 없고 고등학교로 가기에는 너무 시기가 늦은 것 같았고, 하나밖에 없는 아이랑 떨어져 사는 것도 싫었고 유학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이 아이보다 엄마의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보낼 수 없었다. 달래고 설득하고 말려보고 했으나 아이의 의지는 확고했다.
어렸을 때 뇌리에 박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이 여행할 때마다 떠 올랐고 아이도 그런 마음을 가지길 바랬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물질적인 것 말고 경험을 통한 생각의 크기를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것을 보고 체험하더라도 성장 과정마다 느끼고 받아들이는 게 다르고 꾸준한 경험을 통해 본인이 천천히 받아들여야 자기 것이 될 것 같았다. 너무 어린 시기에 여행 다녀봐야 다 잊어버리고 남는 게 없이 고생만 한다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지만, 표현 가능한 기억 속에 인증되어 남아 있지 않을 지라도 피부로 받아들인 경험은 저 깊숙한 곳 어딘가에 자리잡아 아이의 성장과 함께 할 것이라 확신하며(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전혀 상관이 없었지만) 기회만 되면 여행 스케줄을 잡았던 것 같다. 딸과 함께 여행 갈 때마다 여기 너무 좋지 않니, 이 나라는 문화가 어떻고 교육이 어떻고, 살기에 더 나은 것 같다 등등 나름대로 장점을 계속 읊어 대며 노래를 불렀었다.
내 나이 20살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었는데 플로리다의 디즈니랜드를 보고 천국인 줄 알았고 뉴욕 맨해튼의 모습을 보고 건물 하나하나가 작품이고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것 같아 입을 떡 벌리고 다물지를 못했던 기억들이 아직도 머릿속에 충격이 되어 남아있다.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니! 아~배신감 마저 느꼈던 것 같다. 우물 안의 개구리를 벗어나기 위해 그때부터 계속 여행을 다니며 세계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듣고 느끼려고 했다. 그러니 우리 딸에게도 이런 세상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고 아이가 자연스럽게 세상을 받아들였으면 했다.
기성세대들이 많이 느끼 듯 나 역시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불신이 아주 크고 맘에 안 들었다. 내가 대학을 갈 때만 해도 이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진 않았다. 공부를 하는 아이도 있고 하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모두들 대학에 전적으로 목숨을 걸진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의 교육이 옛날과 비교해서 질적으로 더 성장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한 문제를 덜 틀리기 위해 문제집 열 권을 풀고 주말에 비싼 과외를 해야 하는, 여전히 암기 위주의 교육이 대부분인 것이 너무 낭비 같아 보였다. 우리 아이도 이런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어 의미 없는 공부를 해야 하나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창의성과 자율성을 죽이고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어 버린 대한민국의 입시제도.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까지 되었는지? 하지만 만약 한국에서 계속 공부를 했으면 열심히 해야 한다고 했을 것이고 잘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공부를 등한시하거나 열심히 해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아이와의 갈등이 심했을 것이다. 아이도 공부 못하면 루저 취급을 받는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지내기는 쉽지 않다고 판단을 했을 것 같다.
나는 오빠가 있는 경상도 집안에서 태어나 공대를 거쳐 엔지니어로 살아가고 있다. 남자들 사이에 있는 '나라는 존재' 자체가 다르게 취급받는 경우가 허다했고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배려를 하는 척하며 차별을 당하는 수많은 시간들을 지나왔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그런 곳에서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으며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외국은 다 차별이 없고 능력이 존중되는 사회인가? 꼭 그렇지는 않지만 적어도 여자 엔지니어로 살기에는 아직 우리나라보다 더 나은 곳이 많아 보인다. 비단 남녀 차별은 차치하고도 우리나라에서 엔지니어로 사는 것은 별로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우리 딸도 이과 쪽에 관심을 보이더니 엔지니어를 하겠다고 한다. 뭔지 잘 모르지만 엄마가 하는 일이라 여러 가지로 좋아 보였나 보다. 이래서 집안 분위기가 중요한데... 그렇다고 내가 진짜 순수 엔지니어도 아닌데... 엔지니어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니 엄마가 했던 말들이 조곤조곤 귓가에 울렸을 것이다.
16년을 이런 엄마랑 살다 보니 은연중에 나의 의도가 많이 전가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내가 자초했다, 인정.
아이도 상황 판단을 했을 것이고 자신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이것 말고도 수많은 트리거에 의한 성장과 마음의 변화에 의해, 어느 날 갑자기 뚝딱 마음을 먹은 게 아니라 이것저것 스멀스멀 올라오는 갈등의 시기를 거쳐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마침내 최종 통보를 한 것이리라.
그래서 너무 외롭고 힘들지만 하루하루 버티고 견뎌내고 있는 중이다.
엄마도 아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