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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와 소나무

by 유이

2,100여 점의 작품과 860점의 유화를 남긴 고흐는 죽기 2년 전인 1888~1890년 사이, 아를과 생레이에서 지낼 때 굉장히 많은 그림을 그렸다. 날짜로 따지면 거의 하루에 한점 이상 그림을 그렸는데 일반 사람은 할 수 없는 작업 량이라 그림을 그리다가 정신적으로 더 불안해진 건지 아니면 그래서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팔리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강박, 생활에 대한 불안감, 전적으로 의지해야만 하는 동생에 대한 미안함, 고갱과의 불화, 예술가로서 입지를 다지지 못한 점 등 다양한 요소들이 그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고흐의 그림은 흔히 해바라기, 사이프러스, 자화상, 초상화, 들판 등의 큰 카테고리로 나눠서 평가하기도 하는데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소나무 그림도 꽤 있다. 소나무 그리기를 하며 관심을 갖다 보니 다른 화가들이 그린 소나무를 보고 싶었고 고흐의 그림에서도 찾을 수 있어 매우 기뻤다.


소나무는 잎도 특색 있긴 하지만 다른 나무에 비해 나무 기둥 껍질 표현을 잘하면 쉽게 구분이 가능한데 고흐의 그림에서도 소나무의 기둥은 아주 개성 있게 표현되어 있다. 갈라진 나무껍질의 색을 여러 가지로 화려하게 표현한 것이 있는가 하면 여러 갈래 물줄기가 나무 기둥을 타고 올라가듯 표현해 놓은 것도 있다. 메인 기둥이 뭉뚝 잘려버린 것도 있고 멀리 있는 소나무는 기둥보다 잎 표현에 더 공을 들인 작품도 있다. 소나무 잎들은 뭔가를 갈망하듯 어딘가로 향하는 모습이며 고흐의 마음을 대변하듯 뭔가에 흔들려 안정적이지 못한 느낌을 준다.


Study of Pine Trees, 1889,.jpg
생레미정신병원정원.jpg
[정신병원 정원의 소나무, 1889년 / 정신병원 부지, 1889년]
pine tree 2.jpg
‘생폴 요양원 정원의 소나무와 민들레’.jpg
[Pine Trees with Figure in the Garden of Saint-Paul Hospital, 1889/Pine Trees And Dandelions ,1890]
path in pine Trees with Figure in the Garden of Saint-paul Hospital 1889.jpeg
pine tree.jpg
[Path in Pine Trees with Figure/ Pine Trees against a Red Sky with Setting Sun / 1889]


소나무는 주로 1889년에서 1890년 사이에 그렸는데 생레미 시절 본인이 지내던 병원의 정원에 있는 소나무들이다. 그의 작품 중 소나무가 있는 생레미 병원의 정원을 그린 두 가지 버전의 그림이 있는데 고흐는 에밀 버나드(Emile Bernard)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 그림에 대해 아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정원의 모습과 소나무. 그리고 흙의 색, 소나무 가지, 잎, 배경 하늘 등. 이토록 자세한 설명을 보니 그가 그림을 그리며 사물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의미를 부여하는지 알 수 있다. 이 시기는 몸과 마음이 모두 좋지 않았던 만큼 마음속에 자리 잡은 깊은 불안이 여러 가지 형태로 그림에 고스란히 스며든 듯하여 마음이 아려온다. 계절에 상관없이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를 보면서 그의 마음도 좀 더 평온하게 유지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오히려 그가 견디고 있는 고달픔이 소나무의 푸르름과 대조되는 것 같아 더 아프게 다가온다.


"내가 있는 정신병원 정원의 풍경은, 오른쪽에는 회색 테라스, 집의 일부, 꽃이 시든 장미 덤불들이 있고 왼쪽에는 붉은 황토로 된 태양에 타버린 흙의 정원이 쓰러진 소나무 가지로 뒤덮여 있습니다. 정원의 가장자리에는 붉은 황토색 줄기와 검은색이 섞여 슬퍼 보이는 녹색 잎의 가지가 있는 큰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습니다. 키 큰 소나무는 노란색 배경에 보라색 줄무늬가 있는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 있습니다. 배경은 높이 올라갈수록 노란색이 분홍색으로 바뀌고 또 녹색으로 바뀝니다. 시야를 가리고 있는 붉은 황토벽 위에는 보라색과 황토색 언덕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첫 번째 나무는 거대한 나무 몸통을 가지고 있지만 번개에 맞아 잘려 나갔습니다. 가지 하나가 매우 높이 솟아올라있지만 다시 짙은 녹색 가지들로 인해 쓰러집니다. 이 짙은 녹색의 거인은 마치 겸손해진 오만한 사람처럼 살아있는 존재의 성격으로 볼 때 그의 앞에서 사라져 가는 덤불에 마지막 장미의 창백한 미소와 대조를 이룹니다. 나무 아래에는 어두운 상자 같은 빈 돌 벤치가 있습니다. 하늘은 비가 내린 후 웅덩이에 노랗게 반사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깜박이는 햇살이 작고 어두운 형상들이 여기저기 배회하고 있는 나무 몸통의 어두운 황토색을 주황빛으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붉은 황토색과 슬픈 느낌의 회색이 섞인 녹색, 윤곽선의 검은색 조합은 불행으로 고통받는 내 안의 불안감, 즉 ‘빨간색 보기’ 고 불리는 불안감을 조금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더욱이 번개에 맞은 거대한 나무의 모티브, 가을의 마지막 꽃의 시든 분홍빛과 녹색빛 미소는 이러한 생각을 확증해 줍니다."


에밀 버나드(Emile Bernard)에게 보내는 편지


pine tree 3.jpg
A Corner of Saint-Paul Hospital and the Garden with a Heavy, Sawed-Off Tree.jpeg
[Corner of Saint-Remy hospital gardens의 두가지 버전,1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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