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여행
거의 10년 만에 파리로 여행을 오게 되었다. 여러 번 가본 곳은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가게 되는데 아이 때문에 매년 영국을 가게 되어 장거리 여행을 따로 계획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도 파리는 몇 번이나 영국 가는 길에 들를까 했었는데 스케줄이 잘 맞지 않고 짐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것도 힘들어 나중에 가야지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던 중 특별한 이벤트가 있기도 하고 마침 영국에 있는 아이 학사 일정이 일찍 마무리되어 일주일 여유가 있었고(프로젝트 제출할게 하나 남기는 했지만) 방학이라 한국에 들어오는 날짜도 비슷하게 맞아서 겸사겸사 파리 여행을 급하게 결정했다. 여러 가지 상황이 파리로 떠나는데 다 맞춰주고 있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어쩔 수 없잖아? 하는 느낌으로 다가…
30년 넘게 매년 2~5번의 비행기를 타는 내게 비행기를 타는 건 지루함을 넘어 작은 고통 수준이다. 20대 때는 비행기 멀미를 하여 음식을 먹기는커녕 좌석 앞에 준비되어 있는 종이봉투가 필수 품이었고 10년 정도 지나 멀미가 조금 나아진 뒤로는 잠을 자지 못했다. 장거리 비행을 할 때면 꼬박 48시간을 깨어있는 경우도 있어서 여행의 즐거움에 앞서 비행의 고통이 먼저 다가왔다. 어느 시점부터는 여행의 즐거움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비즈니스를 이용했는데 나의 경제 사정을 아는 친구들은 과소비라 했지만 2~3번 갈 여행을 한 번으로 줄여서라도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비행의 고통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몇 년 전부터는 경제적인 이유로 비즈니를 타지 못하는데(돈이 없기도 하지만 비즈니스 요금이 너무 많이 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비행기 타는 게 무서울 지경이지만 비행기 타는 날 빼고 하루 정도는 푹 쉬면 그나마 체력이 회복되니 3~4일은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라고 여기고 계획을 세운다. 그나마 50대니까 괜찮지 60대가 되면 진짜 더 불가능할 것 같기도 하니 오히려 더 열심히 다녀야 하나 생각이 든다.
약 14시간의 비행 후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출발전날 잠을 설처서 너무 졸리는데도 자리도 불편하고 몸도 피곤하니 오히려 더 잠이 오지 않는다. 그냥 피곤한 정도가 아니라 멍하니 머리가 돌아가지 않고 심지어 두통이 심해지기까지 한다. 도착하자마자 호텔에서 푹 쉬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래서 젊어서 갈 수 있을 때 여행을 많이 다니라고 했나 보다. 이제는 나만 이런 게 아니라 친구들도 하나같이 비행기 타는 게 너무 힘들다 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내 맘을 딱 듣고 이해해 주는 그런 비슷하게 늙어가는 친구들이 있으니 좋다.
영국에서 오는 아이를 기다리는 3시간이 왜 이리 긴지. 책도 읽고 차도 마시며 기다려야지 했던 계획은 온 데 간 데 없고 멍하니 공항 의자에 앉아(잠시 노숙자처럼 눕기도 했다) 하염없이 기다렸다. 샤를 드골 공항은 터미널이 1, 2A~2G, 3 이렇게 세부적으로 나눠져 있었다. 아이가 나올 터미널 2C는 게이트도 작고 비행기도 몇 대 없어서 다행히 엇갈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무사히 아이와 만난 뒤 숙소까지는 우버나 택시를 타기로 했다. 일단 택시 정류장으로 가서 뭘 탈지 결정하기로 하고 택시를 타는 곳 표지판을 따라 한참을 걸어도 공사를 하고 있는 정리되지 않은 길만 보이고 정류장은 나오지 않는다. 이리저리 짐을 끌고 헤매고 있으니 지나가던 차가 옆으로 쓱 다가와 어디 가냐고 물어본다. 택시를 찾고 있다고 하니 자기가 데려다 줄수도 있다고 했다. 짐도 있고 피곤하기도 하고 어떡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우리 옆을 지나던 남자가 이 모습을 보더니 나를 보며 타지 말라고 손짓을 했다. 어떤 할머니와 함께 걸어가고 있어서 좀 더 믿음이 가긴 했다. 그런데 이번엔 데려다줄 수 있다는 아저씨가 저 사람이 사깃꾼이니 믿지 말라고 한다. 엥? 처음 보는 2명의 남자가 서로를 사깃꾼이라며 뭐라 하니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하다. 복잡해지는 게 싫어 그냥 택시 정류장을 찾아가기로 하고 가던 길을 되돌아 또다시 걸어갔다.
그러다 아까 할머니랑 같이 가던 분과 마주쳤는데 어디 가냐고 묻는다. 택시 정류장을 찾는다고 하자 아까 가던 길로 다시 가라고 한다. 거기 길이 없는 것 같다고 하자 본인이 그쪽에서 왔다면서 다시 가라고 한다. 믿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다 달리 방법이 없어서 다시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할머니를 모시고 가던 그분이 택시를 몰고 우리 옆에 차를 세우더니 차에서 내린다. 택시 기사였구나. 공사판 같은 길이어서 표지판이 명확하지 않았는데 옆으로 다가와 엘리베이터 타는 곳까지 자세히 알려준다. 택시 안에는 아까 그 할머니가 타고 있었는데도 일부러 내려서 택시 타는 곳까지 자세히 알려주는 모습에 잠시나마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고 여긴 것이 미안했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었고 다른 아저씨가 사깃꾼이라고 하니 나쁜 사람이려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여기는 유럽에서도 소매치기, 사기등이 많이 일어나는 파리가 아닌가. 할머니도 그렇고 택시 기사도 그렇고 바쁠 텐데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고 낯선 이방인에게 베푸는 친절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파리에서의 첫인상으로 역시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나 파리에 다시 왔다.
Bon jour, P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