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가고...

우리 딸도 가고

by 유이

여유로운 일요일, 늦은 브런치를 먹고 양재천을 찾았다. 꼭 야외에서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마저 느껴지는 화창하고 좋은 날이었다. 1년 365일 중 이렇게 좋은 날씨는 손에 꼽을 정도인데 한 여름을 견딘 지 얼마 안 된 터라 더 반갑게 다가왔다. 하늘은 푸르르고 바람은 선선하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적당한 날씨. 더위가 한풀 꺾였나 싶은 게 엊그제였는데 밤에는 시원한 바람마저 부는 것이 눈 깜짝할 사이 계절이 변해 있다.

야외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호사는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리라. 달콤한 디저트로 더 달달해진 오후에 한가롭고 행복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인 듯하다.


난 뜨거운 열기를 한껏 품은 여름을 좋아한다. 모든 사물을 태워버릴 듯한 열정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자신감을 넘어 오만함으로 가득한 여름이 좋다. 온 세상을 집어삼키려 발악을 하는 그 무모함이 멋있어 보인다.

그런데, 그런 여름이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다. 구렁이 담벼락 넘듯 슬그머니 파고든 가을에게 아직 건재함을 보여주려 한낮에 온 힘을 내어 자존심을 세워보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이내 꺾이고 만다. 살랑살랑 부는 얄미운 바람에 힘이 빠져 버린다. 무서울 게 없는 근육질의 당당한 전사의 모습을 떠올리는 가을의 그림자가 여름을 덮어버린다.

더운 여름이 가고 활동하기 좋은 가을은 대부분 사람들이 좋아하는 계절이지만 나에게는 슬퍼지는 계절의 시작이다. 한풀 꺾인 여름의 초라한 뒷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안타깝고 그 당당했던 여름이 사라져 가는 것이 슬프다. 이렇게 여름이 가는 이 시기가 싫다.


이런 계절에 우리 딸이 떠난다. 왜 하필 지금인지...

벌써 5번째인데도 매번 새롭고 매번 슬프다. 익숙해 질만도 한 데 갈수록 슬픔의 농도가 더 깊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견뎌야지. 오늘도 버텨야지. 한 없이 지속되지는 않겠지. 이 또한 지나가리라~


'눈이 부신 날에 이별해봤니 비 오는 날 보다 더 슬퍼~'

벌써 보고 싶다.

우리 딸!




8월 말 영국으로 떠나기 일주일 전, 양재천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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