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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 Jan 30. 2023

사라진 학창 시절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딸이 중학교를 마치고 유학을 간 덕에 한국에 여러 명의 친구들이 있고 여전히 연락하며 잘 지내고 있다. 친구들을 만나고 오면 행복에너지가 아이를 감싸고 있는 게 보인다. 방학 때 친구들과 만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스케줄 중의 하나이다. 이번 방학에도 마침 친구들의 기말고사 시험이 다 끝나고 난 뒤여서 모두들 편안한 마음으로 늦게까지 놀다가 왔다.

    "엄마, 내일 친구 학교 공연한다고 해서 갔다 올게"

    "너도 가도 돼?"

    "응, 외부인(?)들도 와도 된대. 너무 재밌겠어. 그리고 친구들이 학교 급식얘기를 하길래 먹고 싶다고 했더니 와서 먹어도 될 걸 그러던데. 나 먹으러 가도 될까?"

    "엉? 그거 좀 이상한 것 같은데. 그 학교 학생도 아닌데 급식을 먹는다고? 너 누구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할 거야?"

    "잘 모를 거라는데? 만약 들키면... 그냥 죄송하다고 하고 나오면 되지 않을까?"

    

    한국에 있었으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행사이고 일상으로 먹었을 급식인데 오죽 먹고 싶으면 저런 생각을 할까. 예전 같으면 저런 모험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아이인데 진짜 먹고 싶었나 보다. 아니 친구들의 고등학교 생활이 부러웠나 보다. 

    한국의 고등학교 생활도 무척 힘들고 빡빡했겠지만 그냥 친구들과 그 시기를 함께 보낸다는 그 자체로 학창생활의 추억이 될 텐데, 우리 딸에게는 고등학교 학창 시절이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고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목표로 혼자 외로이 공부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면 대체로 행복했던 것 같다. 

    친구들이랑 장난치며 놀던 일, 수업 시간 땡땡이쳐보려고 선생님을 졸라 재밌는 얘기 해달라고 한일, 오락시간이 되면 별것도 아닌 친구들의 재롱에 까르르 웃던 일, 담 타 넘고 떡볶이 먹으러 갔다가 걸려서 혼났던 일, 야자 시간에 친구랑 진로에 대해 고민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하던 일, 모든 선생님들의 별명을 지어서 부르던 일 등 그때를 생각하면 흐뭇하게 미소가 지어지고 그리워진다. 

    좋은 일만 있었겠나?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비인격적인 말과 행동, 폭력이 난무했고 공부 잘하는 아이 그렇지 않은 아이에 대한 차별이 너무나 당연했으며 뇌물과 촌지가 일상이었던 시대였다. 

    하지만 나의 기억에는 나쁜 일보다 좋았던 기억이 미화되어 남아있다. 

    그 시절 친구들은 지금 뭘 하며 살고 있을까? 선생님들은 잘 지내고 계실까? 


    우리 딸의 고등학교 시절은,

    혼자 겪어야 하는 외로움과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중압감과 대학을 가야 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불친절한 선생님들, 우중충한 날씨, 맛없는 음식 등 현재로선 만족하지 못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겠지만 

    이 시기를 잘 보내고 다시 한번 돌아봤을 때는, 

    견뎌냈다는 대견함, 이뤄냈다는 성취감과 자신감, 그리고 자신을 더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한층 더 성숙된 모습과 함께.


    비록 나와 같은 학창 시절의 추억은 만들지 못하겠지만 본인이 원하는 길을 걷기로 했으니 노력에 대한 보답이 있길 바라며, 행여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너의 선택은 '옳았고', 그게 어떤 모습이든 '괜찮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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