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fortunately
옥스퍼드에서 메일이 왔다.
일정상 11월 말에 와야 할 메일이 계속 오지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메일이 12월 초에 왔다.
원서를 낸 건 예상 점수가 너무 좋아서였다. 언감생심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도전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1년 전만 해도 옥스브리지에 원서를 내는 건 상상도 못 했던 일이지만 1년 사이 아이의 성적이 올랐고 최종적으로 좋은 성적을 받아 안 낼 이유도 없었다. 물론 GCSE 성적도 없고 올림피아드 같은 대회에서 메달을 따긴 했지만 우수한 성적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터뷰라도 하고 도전을 해봤다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겐 좋은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에 원서를 냈다.
10월 15일 원서를 내고 11월 초 PAT시험을 친 후, 빠른 아이들은 11월 중순에도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인터뷰 불합격 메일도 11월에 대부분 다 온듯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11월이 끝나도 메일이 오지 않았다. 12월이 되고 하루, 이틀 며칠이 지나도 메일이 오지 않자 혹시라는 마음이 생겼다. 대학에서 뭔가 고민을 하고 있는 상황임이 분명하다. 자소서가 괜찮았나? 옥스퍼드 내 컬리지를 돌면서 검토하느라 늦나 본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면 빨리 메일을 줬겠지? 은근히 마음이 설레었다.
12월이 일주일 정도 지난 즈음 아이와 일상적이 카톡을 주고받다가 말미에
"그리고 나 옥스퍼드 떨어짐"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메일을 툭 보내준다.
"엉? 메일이 왔어? 떨어졌구나. 괜찮아?"
"응, 전혀 기대도 안 했는데? 난 여기랑 안 맞아. 그리고 난 런던에 있는 대학에 갈 거야"
아이의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나로선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Unfortunately라는 단어가 왜 이리 가슴에 꽂히는지. 왜 이렇게 시간을 끌어가지고 사람 헛된 기대를 품게 만들고는...
대학을 지역으로 고르는 아이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느 대학 갈 거야도 아니고 런던에 있는 대학이라니. 런던에 있는 대학 둘 중 하나를 가겠다는 말인 줄 알면서도 참 어리고 순진하다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짐과 동시에 이런 아이가 혼자 공부한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 만감이 교차한다.
목표를 세웠으니 이루는 게 중요한 것 같기도 하고 그 과정을 통해 배우는 게 많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안 하면 어때 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래도 하는 게 낫지 라는 마음도 생긴다. 어떤 식으로든 최종 결론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계속 갈팡질팡 할 것 같다.
바다에 표류하는 돛단배처럼 살랑이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일렁이는 파도를 따라 이리저리 항해를 하다가 최종적으로 어딘가에만 도착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진짜로~
옥스퍼드 지원 스케줄
10월 15일 UCAS 지원 : A level 예상 성적, Personal statement, 상 받은 리스트, GCSE 성적
11월 2일 *PAT(Physics Aptitude Test) 시험
11월 말 인터뷰 요청 관련 메일
12월 인터뷰
1월 Offer
*PAT
Engineering, Materials Science, Physics and Physics and Philosophy 코스에 지원한 사람은 PAT 시험을 봐야 한다. 2시간 정도 시험을 치르게 되며 GCSE나 A level 수준의 수학과 물리 내용이다. 옥스퍼드 지원자들은 성적이나 자기소개서 등 훌륭한 레퍼런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오는 지원자들을 걸러내기 위한 시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