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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 Jan 08. 2023

유학 생활이 힘들어?

하지만 어쩌겠어 버티는 수밖에

    대학 시절 군대 간 동기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휴가 나왔을 때 “또 나왔어?”라는 말이었다. 입영통지서가 나오면 마치 다시는 못 볼 사람들처럼 환송회를 거하게 한 후 다음날에도 술에서 절대로 깰 수 없는 상태로 보내는 게 통과의례였다. 첫 휴가땐 대부분 동기들이 다 나와서 환영을 해주지만 두 번, 세 번 되풀이되면 하나둘씩 빠지기 시작하다 소수인원만이 남는다. 다들 하는 건데 특별할 것도 없고 첨엔 신기했던 군생활의 무용담이 두세 번 듣다 보면 비슷비슷한 레퍼토리가 되풀이돼 시큰둥해진다. 본인들은 학수고대하던 휴가를 나왔는데 갈수록 식어가는 분위기에 "또 왔어?"라는 말까지 들으면 굉장히 섭섭했을 것 같다. 군에서의 시간과 민간에서의 시간은 다르게 흘렀던 것 같다.

    우리 딸에게 유학은 군대 간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끝날 때까지 참고 견뎌고 버텨야 하는 곳이다. 대학을 가기 위해 의무적으로 복무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군대에서 휴가와 같은, 오매불망 손꼽아 기다리던 방학. 한국에 와서 그동안 못했던 일들이 너무나 많은데 엄마는  호응해 주지도 않고 시간낭비 하는  아니냐, 공부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를 해대마치 ' 왔어'라는 말을 들은 것처럼 상처를 받았으리라. 이렇게 힘들걸  간다고 했어? 이럴  몰랐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본인인들 알았겠나 이렇게나 힘들 .

   

    영국유학을 하면서 여러 가지 불편하고 어려운 점이 많겠지만 아이의 표면상 불만은 다음과 같다.

    1. 으스스한 날씨

    해가 나오는 날이 많지 않다. 이젠  해만 나오면  많은 유럽인들이 돗자리를 들고 나와 일광욕을 하는지 이해가 된다. 그래서 우울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단다. 비단 날씨 때문에만은 아니겠지만 날씨가 이렇게 영향을 많이 주는지 미처 몰랐다. 한국은 한 겨울에도 해가 가득한 날이 너무 많이 많으니까. 영국은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최저 기온이 영하로 찍히는 날이 며칠 있긴 하지만 대부분 영상이다. 눈이 오긴 와도 쌓이지 않을 정도로 혹독한 추위는 없기에 난방을  한다. 바닥 난방은 당연히 없고 그래서  춥게 느껴진다. 겨울을 대비하지 않은 11월과 끝났다고 생각하는 3월이 을씨년스러워 오히려  춥게 느껴지는 기분처럼. 한국에서는 추위를 전혀 타지 않은 아이였는데.

    2. 맛없는 음식

    영국사람들은 진짜 음식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긴 하다. 5대 영양소를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훌륭한 중학교 급식의 맛을 알기도 하고 원래 음식을 무조건 적으로 받아들이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기숙사의 음식에 대해서 꽤 큰 불만이 있다. 맛있는 음식은 기대하지 않지만 신선한 채소와 과일은 차치하더라도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이 헐벗은 듯 나와 생존의 투지 외에 음식에 대한 즐거움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단다. 먹는 것이 굉장히 큰 기쁨 중의 하나인데 크게 느껴지는 부분인 듯하다.

    3. 그리운 친구

    외국에 나가면 애국심이 절로 생기는지 대부분 아이들이 자기 나라 친구들과 어울린다. 러시아, 베트남, 중국, 우크라이나 등등 각 나라별로 몰려다닌 다는데 한국아이들은 상대적으로 덜 뭉친다고 한다. 게다가 마음을 나눌 친구가 없어 외롭고 힘들어한다. 어렵고 힘들어도 맘에 맞는 친구가 있으면 같이 헤쳐나갈 수 있을 정도로 친구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인데 그렇지 못해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해한다. 친구의 그리움을~

    4. 너무 다른 공부 방식

    한국은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으로 밑줄 쫙, 동그라미 팍, 별 2개, 선생님이 중요한 것 아닌 것 일일이 다 가르쳐 준다. 영국은 문제집도 없고 학원도 없고 물어봐도 속 시원히 대답도 안 해주고 한국처럼 열의도 없고. 달라도 너무 다른 교육 방식에 적응하기 쉽진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겠지만 아이에겐 너무 시간이 없다..

    5. 좁은 기숙사

    딱 필요한 공간만 있다. 침대, 책상, 아주 약간의 공간. 화장실, 샤워부스도 좁고 수납공간이 넉넉지 않으며 세면대는 미니 사이즈. 답답할 것 같긴 하다. 런던도 아니고 시골인데 공간을 좀 넉넉하게 지을 것이지. 난생처음 엄마 없이 혼자 지내는 생활이 익숙지도 않고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긴 하겠지. 그나마 1인 1실에 화장실이 방안에 있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6. 시골 환경

    사방에 건물 몇 개와 나무뿐인 들판이다. Tesco를 가려고 해도 최소 10분 이상 보행로가 잘 확보되지 않는 길을 걸어가야 해서 큰 맘을 먹어야 갈 수 있다. 같이 동행할 친구도 찾아야 하고 돌아오는 길은 Uber도 타야 하니 혼자 가기에는 무리다. 도시에서, 그것도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는 서울에서 살다가 영국의 어느 이름도 몰랐던 시골마을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으니 창살 없는 감옥에 있는 것 같을 것이다.

   

눈 오는 기숙사 밖 풍경

    세상이 좋아져서 매일 카톡을 주고받고 통화도 하면서 일상을 공유하고는 있지만 함께 살을 대고 같이 있는 것과는 다르다. 어떤 상황에 있고 상태가 어떤지 아이가 얘기하는 부분은 알 수 있지만 대면을 통해 감지할 수 있는 표정, 제스처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빠져있어 모든 걸 다 파악하긴 어렵다. 짧은 시간에 많을 걸 얘기할 수도 없으며 모든 걸 다 말로 표현할 수도 없으니 뉘앙스를 파악해서 알아채 주는 부분이 필요한데 비대면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은 뭔가 한 꺼풀 씌워져 겉도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아이는 계속 외형적인 불만을 토로한다. 뭐가 맘에 안 들고 뭐 때문에 짜증 나고...    

    다 이해된다. 그럴 것 같다. 한창 예민한 시기이고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도 많을 거고 투정 부릴 엄마도 옆에 없고 마음을 나눌 친구도 없고. 게다가 본인이 꼭 가겠다고 우겨서 떠난 유학이니 미주알고주알 말 못 하는 심정이야 오죽하겠나. 잘할 수 있을 것이라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풍성했던 머리도 많이 빠지고 소화가 되지 않아 음식도 충분히 먹지 못하고 여드름 하나 나지 않던 얼굴에도 얼룩덜룩 뭐가 나서 스트레스가 눈에 띌 정도로 외형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스트레스는 그 근본 원인이 해소되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는다. 겉으로 사라진 듯해도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을 뿐 언제든 발현 가능하다. 가끔 별것도 아닌 것에 폭발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폭탄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채로 남아있다. 마음을 먹는다고 한 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의지가 약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유학을 보내지 말걸. 하지 않아도 되는 고생을 하는 것 같아 안쓰럽고 미안하고 측은하다. 하지만 어쩌겠어. 이때까지 오느라 고생했고 조금만 지나면 목표에 다다를 수 있으니 조금만 더 버티는 수밖에. 최종 시험이 끝나고 대학을 가야 지금의 스트레스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 잘 다독이며 이 시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옆에서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엄마가 도와줄게, 같이 이겨나가자. 울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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