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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 Mar 20. 2023

쉬어도 괜찮아

감기 같은 거야

    한 달 정도 한국에서 시간을 갖기로 하고 돌아오자마자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전화로 얘기할 때와는 다르게 더 안 좋아 보였다. 불안하고 날카로우며 힘이 없어 보였다. 왜 나는 전혀 알지 못했을까 아이의 이런 상황을. 


    일단 아이를 안정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신체에 큰 이상이 없는 지를 알아보기 위해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 여전히 소화가 잘 되지 않은 상태였고 스트레스성 위염일 가능성이 높아 약을 먹으면서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혹시나 다른 이상은 없는지 피검사를 했는데 간수치가 살짝 높은 것 말고는 이상이 없어 간은 조금만 피곤해도 수치가 높게 나올 수 있으니 큰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의료계에 종사하는 친구의 말이 의사의 역할 중 제일 중요한 것이 수술이나 처방이 아니라 '지금 상태가 이렇고 그래서 이렇게 하면 괜찮아진다'라고 환자를 안심시키는 거라고 했었는데 그 말이 이해가 되었다. 의사 선생님이 그 나이 때에는 큰 병에 있을 수 없고 대부분 스트레스성 위염을 가지고 있으며 신기하게 대학을 가면 모든 병이 사라진다고 하여 우리 아이 말고도 많은 아이들이 입시 스트레스를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고 3일 때는 어땠나 생각을 해보니 특별히 스트레스를 받은 기억은 없다. 물론 너무 오래전일이라 기억이 희미해지고 아름답게 과거가 포장되었겠지만 특별한 에피소드나 힘들었던 감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 당시는 지금보다 입시 경쟁이 훨씬 덜 했고 취업이 잘 되던 시절이어서 학과를 고를 때도 지금처럼 특정 과에 몰리는 일도 없었다. 그냥 순리대로, 점수대로 특별한 유난 없이 지나갔던 것 같다. 아~한 가지.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가지 못했었고(오빠도 서울로 안 갔는데 여자가 가긴 어딜 가!) 만약 그때 바득 바득 우겨서 서울로 왔었으면, 그렇게 되었으면 나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했었던 것 같다.           

 

    그다음 정신적인 안정을 취하고 정확한 상태를 알아야 하니 빨리 상담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랑은 매일 통화를 하고 얘기를 나누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거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진단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구에서 운영하는 무료 상담센터가 있었다. 그런데 상담하는 사람이 많아서 몇 달 뒤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무료여서 그런 건지 상담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 지인를 통해 소개를 받아 상담을 시작 했다. 아이의 현재 상황과 있었던 일들, 자라온 환경과 아이의 성격 등에 대해 쭉 얘기를 하다가 영국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본인은 영국에 있을 때의 선생님 문제가 전혀 아니며 지금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다고 했지만 그 선생님 얘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눈물이 주르륵 흘르는 걸 보고 상담선생님이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 사건이 마음깊이 응어지 져 있는 거라고 했다. 일종의 신체화현상이라고 했다. 예상했던 대로 영국 선생님과의 그 사건이 아이마음을 흔들어 놓은 시발점이 된 것이다. 속상했다. 그때 알았었으면 더 빨리 조치를 해서 마음의 상처를 덜 입을 수도 있지 않을까? 빨리 인지 하지 못한것에 대해 미안하고 속상하고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아이도 정확하게 그게 뭔지 몰랐고 본인도 인지하지 못했다.  


    영국으로 돌아가서 공부를 할 수 있을까? 한번 생긴 트라우마가 쉽게 지워질까? 다른 아이들은 잘하고 있는데 왜 우리 아이만 이런 거지? 뭐가 잘 못 되었을까? 머릿속이 복잡하고 길이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한 걸음씩 발을 내 디뎌야 한다. 그래야 어떻게든 나아갈 수 있을 테니... 


     아이에게는 잠시 쉬어도 괜찮다고, 그냥 지나가는 감기 같은 것이라고 얘기했다. 누구나 걸릴 수 있으며 다시 괜찮아 진다고. 그럼,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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