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딸이 '기시미 이치로'의『미움받을 용기』를 읽고 많은 걸 깨닫고 있다며 같이 읽기를 권하길래 '기시미 이치로'의 저서를 찾아보니 20권이 넘게 나온다. 그중 제목에서 혹하는 '엄마를 위한 미움받을 용기-어떻게 하면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를 먼저 빌려왔다. 이 책은 저자가 직접 아이들을 키운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이라는 주제에 아들러의 심리학을 풀어서 쓴 책이다. 저자는 아버지이지만 7년 동안 보통의 엄마들이 할 법한 육아를 대신했기 때문에 그의 경험에 빗대어 이 책을 썼다. 엄마냐 아빠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 양육자가 누구이며 아이와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인것 같다. 다시 아이를 키우면 더 잘 키울수 있을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의 저서 중 '아버지를 위한 상처받을 용기'라는 책도 있어서 다음에 한번 빌려볼까 한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엄마랑 무척 친하다는 딸의 말에, 아이와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부족한 뭔가가 있는 것 같다. 몰라서 하지 않는 것보다 알고 더 노력하자는 마음에 후다닥 읽어 내려갔다. 나중에 기억하고 되짚어볼 만한 부분들을 다시 한번 필사(?) 하면서 가슴에 새겨본다.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의 대가로 『미움받을 용기』로 세계적인 반항을 일으켰고 알프레드 아들러는 '개인심리학'의 창시자로 프로이트,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이라고 한다. 기회가 되면 심지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에 대해 좀 더 알아보아야겠다.
<책 본문에서>
무언가 문제가 일어나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가 연못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때도 당황하지 말고, 조금 기다리면 아이는 힘이 빠집니다. 그러면 신체가 물에 떠오릅니다. 그때 손을 뻗거나 잡을 것을 내밀거나 물속에 뛰어드는 겁니다. 부모가 당황해서 함께 고민하면 그 타이밍을 알아채기 어려워집니다. 심각한 것과 신중한 것은 전혀 다릅니다. 육아는 사실 아이의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마주해야 합니다. 어떤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해도 아이의 성장에 따라 새로운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좋은지 알고 있다면 좋겠지만, 모른다고 심각하게 고민해 봤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아이는 언제나 부모를 기쁘게만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자신의 아이임에도 때려주고 싶을 만큼 화가 났던 경험을 한 번도 하지 않은 부모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일이 두 번 세 번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일도 아이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부모에게 심한 대우를 받거나 혼나는 것이 아니라 소중히 여겨지는 게 바람직하겠지요. 아이가 성장한 뒤 부모가 자신을 소중히 대한 일에 대한 기억은 잊더라도 그때 느낀 감정은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연달아 문제가 일어난다고 해서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는 항상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성장하면 새로운 문제가 생기는 게 당연한 일이고, 부모도 아이와 마찬가지로 성장합니다. 제 이미지에서 아이와의 관계는 문제를 해결해도 목표가 점점 멀어지는 듯한 신기루가 아니라, 나선형 계단과 같습니다. 빙글빙글 돌아서 또 같은 곳에 돌아온 것 같아도, 반드시 전보다 높은 곳에 도달해 있습니다. 몇 번이나 도돌이표로 돌아가거나, 앞으로 가지 못하는 것 같아도 문득 어느 순간 높이까지 와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매일 모든 부모가 아이 문제로 고민할 겁니다.
하지만 막상 정말 큰 문제가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 말은 상담을 받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큰 문제가 없다는 뜻입니다. 병에 걸린 게 아니라 해서 건강하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지금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뿐인지도 모릅니다. 건강이 병에 걸리지 않는 상태 이상을 의미하는 것처럼, 건강한 부모. 자식 관계도 문제가 없다는 것 이상의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부모는 아이가 관심받기 위해 일부러 혼날 행동을 하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아이는 ‘혼나는데도’가 아니고 ‘혼나기 때문에’ 더욱 부모에게 혼날 행동을 합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를 조금 말씀드리자면, 아이는 어른과 마찬가지로 소속감을 원하고, 여기에 있어도 괜찮겠다고 느끼고 싶어 합니다. 부모는 아이가 혼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행동을 하면 됩니다. 아이가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도 정말은 혼나고 싶지 않습니다. 혼이란 내는 쪽도, 나는 쪽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부분의 부모도, 아이도 알지 못합니다.
“(표를 보여 주지 않은 사람은) 손님뿐입니다. 다른 분들의 표는 확인했습니다. 다른 승객들에게 실례가 됩니다. 저는 이 열차의 책임자입니다. 내려주세요.”
주변 승객들은 마른침을 삼키고 이 두 사람을 지켜봤습니다. 내려달라는 말에 당장이라도 차장에게 주먹질할 모양새였습니다. 결국, 그 남성은 다카오카역에서 불만 가득한 모습으로 내렸습니다.
이때 차장의 태도는 조금도 위압적이지 않았고, 시종일관 냉정했습니다. 태도는 의연했고, 용감하게 대처하는 모습은 승객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저는 이 차량의 책입자입니다”라는 말에 권위를 휘두르는 기색도 없고, 위압적 태도와 의연한 태도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칭찬받지 못하는, 혼나는 아이들은 경쟁에서 진 거라고 생각하겠지요. 형제 관계든 다른 인간관계든, 경쟁에서 지면 정신의 균형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정신 건강을 해치는 가장 큰 요인은 ‘상하 관계’와 ‘수직 관계’, 그리고 그로부터 귀결하는 ‘경쟁’입니다. 이것들은 손쓸 수 없는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면, 아이의 정신 건강이 상처 입는 일을 피할 수 있습니다.
칭찬에는 문제가 이렇게 많지만 가장 본질적 문제는 칭찬이 상하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등한 관계라면 상대를 칭찬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은 혼내는 일에서 알 거라 생각합니다. 대등한 관계라면 상대를 혼내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어딘가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혼낼 수 있는 거지요.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는 “고마워””덕분에 잘 끝났어”와 같은 말을 제안합니다. “고마워”는 칭찬이 아닙니다. 칭찬은 능력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 혹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이라는 평가에 비해 “고마워”는 상대의 공헌에 주목하는 말입니다. ‘네 덕분에 오전 동안 안심하고 밖에서 일할 수 있었어’, ‘
네가 상담 중에 조용히 기다려 주어서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어’와 같이 상대가 공헌해 준 것을 전합니다.
사람은 갑자기 변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보려면 우선 단점이라고 생각한 부분을 장점으로 인정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용기를 얻은 아이는 자신에 대해 지금까지와 다른 시각으로 봅니다. 예를 들면 '어둡다'가 아니고 '상냥하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아들러는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졌는지가 아니고, 주어진 것을 어떻게 사용할까이다"라고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했습니다. 자기 자신과 마주해 가야만 하고, 자기와 다른 누군가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적극적으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그 관계가 자기에게 유용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이해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독립해서 살아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어떤 행동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없이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이때 관계를 어떻게 볼지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적대적으로 볼지, 우호적으로 볼지에 따라 삶을 대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용기를 얻은 아이는 공헌감을 가집니다.
공헌감을 가지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한 일을 인정받지 못해도 충분합니다. 물론, "고마워"라는 말을 듣는 건 기쁜 일이지만, "고마워"라는 인사를 기대하여 적절한 행동을 하는 건 아닙니다.
용기를 얻은 아이는 다른 사람이 각별한 주의를 자신에게 쏟지 않더라도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헌감이 있으면, 자신에게 있을 곳이 있다고 느끼고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강요해서 얻을 수 없는 게 두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존경입니다. 사랑하라는 말을 듣는다 해서 사름을 사랑할 수 있을 리가 없겠지요?
존경에 대해서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상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상대방을 유일무이한 존재, 즉 다른 누군가와 바꿀 수 없는 존재임을 아는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상대사 상대답게 성장, 발전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입니다.
'파괴적 행동'이란 다른 사람에게 실제로 민폐를 끼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나쁜 행동, 문제 행동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민폐를 끼치지 않는다면 반드시 문제 행동, 혹은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신뢰한다는 행동의 다른 의미는 상대의 언행에 반드시 '좋은 의도'가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상대 언행의 표면적인 부분에 얽매이지 않고, 좋은 의도를 보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저는 사람의 마음을 읽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경우 마음을 읽으려 함으로써 인간관계가 삐걱거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사람의 마음을 좋을 대로 읽는 행동은 벗은 몸을 엿보는 행동처럼 실례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읽는다면, 좋은 의도를 읽어 봅시다.
상대가 때로는 올바르지 못한 말을 해서 상처받거나, 혹은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가령 그런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관계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신뢰해야만 합니다.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짓을 하든, 그렇게 함으로써 조금도 상대의 견해를 바꾸지 않기로 결심한다는 것이겠지요. 물론 내가 옳지 않은 말을 하고, 상처를 주고, 화나게 하는 일도 있을 테니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설령 그런 일이 있어도 관계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말하는 내용 자체를 주목하고 상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 신뢰가 있다면 자신이 무조건 옳다고 여겨서 일어나는 권력 싸움은 피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며 아이에게 말을 걸면 어느 날 깨닫게 됩니다.
내가 아이에게 용기를 주는 게 아니라, 이런 생활을 하면서 아이에게 얼마나 용기를 얻고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다시 한번 확인하면, 용기 부여란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 과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 다른 사람을 언제든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이 자신이 스스로의 판단으로 인생 과제를 풀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자, 어른은 아이의 과제를 대신 짊어질 수 없고 아이를 아이의 의지와는 다른 목표로 향하게 할 수 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