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이 Mar 09. 2023

영국학교에서 있었던 일

아이에겐 힘든 일이었다

    아이가 돌아온 날 저녁을 먹으며 비행기 타고 오는 건 힘들지 않았냐고 물으니 아시아나 승무원들이 너무 친절해서 감동받았다고 이야기하며 펑펑 운다. 아이가 있는 Birmingham으로는 직항이 없어서 KLM이나 Air France를 타고 유럽 어느 나라에서 경유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런던으로 가서 아시아나를 타고 바로 인천으로 왔다. 낯선 곳으로 갈 때의 긴장과 친절하지 않은 승무원, 경유할 때의 촉박함 등을 매번 오갈 때 느꼈다가 이번에 첨으로 경유하지 않고 너무 친절한 승무원의 서비스를 받으니 그동안 쌓였던 서러움이 폭발한 것 같았다. 그만큼 혼자 장거리를 오고 가는 게 힘들었단 뜻이기도 한 것 같아 애잔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 아직 아이인데...

  

    태국에서 유학생활을 잘했기 때문에 영국에서의 유학 생활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국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특히 A level college는 대학을 가기 위한 교육을 중점으로 하는 곳이라 일반 학교와는 다르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사이의 과정으로 거의 성인으로 대한다.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하고 일일이 챙겨주지 않는다. 친절하고 상냥한 선생님들에게 익숙해져 아직은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180도 달라진 태도에 일단 움츠러들었고 영국인들 특유의 드라이함과 무뚝뚝함에 더 움츠러들고 있었다.  

    

    A level 시험을 위해서는 3~4 과목을 선택해서 공부한다. 영국으로 가면서 수학, 물리 외에 화학을 처음으로 공부하게 되었는데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무척 힘들어했다. 수학과 물리는 기호나 수식이 영어로 되어 있어 어느 정도 익숙한 상황이었지만 화학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고 특히 용어는 한국에서 쓰던 것과 유추도 하기도 힘들 정도로 달라 무조건 외워야 한다. 그런데 단어하나 외우고 가지 않았으니 첫 수업이 어땠을지는 짐작이 간다. 처음부터 수업 시간에 주눅이 들어있는 상황이라 선생님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준 것 같다. 안 그래도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인데 자신도 없으니 더 움츠러들었을 테고 이런 아이를 공부 못하는 아이라 취급한 것 같다. 처음 몇 주 동안은 화학수업이 너무 힘들다고 거의 매일 전화가 왔다. 일단 수업시간에 나온 화학 용어를 무조건 외우고 특히 주기율표에 나오는 단어를 영어로 외우라고 했다. 원소기호들이 많이 나올 테니 아는 용어가 나오면 그나마 조금씩 자신감이 올라갈 테니까. 영어로 된 주기율표를 보면 너무 생소한 단어에 내가 봐도 아득하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늦었지만 열심히 따라가는 수밖에.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점점 나아지고 있었는데 실험시간에 첫 번째 사건이 생겼다. 화학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가운과 안경이 필요한데 가운을 보관해 둔 곳에 아이의 가운이 없어졌었다(지금도 왜 사라진 건지 알 수가 없다). 선생님에게 얘기했더니 알아서 하라고 하며 실험실에 못 들어오게 했단다. 보조 선생님이 어떻게 가운을 마련해서 아이에게 주었는데 이번에는 안경이 없다고 못 들어오게 했단다. 수업을 하려는 아이의 준비물이 없으면 어떻게 하든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선생님의 역할이 아닌가? 나 몰라라 하고 그냥 쫓아내는 경우가 어디에 있나? 이렇게 생각하는 건 너무 한국식인가? 내가 당해도 놀랄 일이었는데 안 그래도 자신 없는 수업시간에 대놓고 쫓겨나고 나니 아이는 더 자신감을 잃었다. 옆에 있었으면 어떻게라도 위로하고 도와주었을 텐데, 멀리서 국제 전화로 이런 일로 따질 수도 없고 어떻게든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이라 생존을 위한 방법을 계속 얘기했던 것 같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일일이 다 케어할 수 없어 그런 것일 거다. 개인적인 감정이 있진 않을 거니 다음에는 다른 친구나 선생님에게 도와달라고 먼저 해봐라 등등. 하지만 떨어진 자신감은 쉽게 회복되지 않은 것 같았다.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고 자신감이 없으니 선생님은 더 아이가 못한다고 생각을 하고 수업시간에도 종종 그런 말을 했다고 했다. 이런 일들이 조금씩 쌓이면서  아이는 점점 더 힘들어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뒤에는 화학 수업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고 첫 번째 시험에서 A를 받고 그다음부턴 A*인 최고 점수를 계속 받아서 공부하는 건 자신이 생겼지만 선생님을 대하는 건 여전히 어려움으로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두 번째 큰 사건은 1년이 지난 뒤 생겼다. 화학선생님이 대학교 원서, Personal Statement 쓰는 것 등 대학을 가기 위한 전반적인 것을 주도하는 책임자였다. 면담하는 것도 그렇고 아이입장에서는 선생님을 대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계속 지속이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영국은 5개 대학에 지원을 할 수 있다. 아이가 원하는 곳 대학 5개를 써서 선생님과 면담을 하는데 너는 이 정도 갈 실력이 안된다면서 더 낮을 학교로 원서를 쓰라고 했단다. 4과목 모두 최고 점수인 A*를 받았는데 실력이 안된다고 하는 건 무슨 근거인지? 물론 1년 전 처음 학교에 왔을 때는 여러 가지 상황으로 잘 못하는 아이로 생각을 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시점에 예상점수를 모두 A*를 받았는데 실력이 안된다니. 처음부터 잘 못하는 아이는 계속 못하는 아이어야 하는 건가? 아이를 격려하고 칭찬을 하지는 못할망정... 너무 속상했지만 찾아가서 따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떨어지더라도 도전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아이에게 재수를 해도 괜찮으니 원하는 학교에 원서를 쓰겠다고 하라고 했다. 그런데 또 한 번의 면담에서 아이를 무시하며 한국에서는 이런 학교가 유명한가 보지? 부모님의 강요로 이런 학교에 원서를 내는 거냐며, 이런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줄 아냐며 특히 임페리얼은 영국에서도 제일 들어가기 힘든 곳인데 왜 여기를 지원하냐며 써줄 수 없다고 하며 아이를 패닉상태로 몰아넣었다.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맞서서 싸울게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걸 얻어내는 게 더 중요한 상황이니 일단 아이를 안심시키고 교장선생님께 메일을 보냈다. 교장선생님의 답변에는 큰 발전이 있는 아이지만 담당선생님이 걱정이 되어서 그런 것이니 이해하라고 하며 원하는 학교에 원서를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어쨌든 원하는 학교에 원서를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아이를 위로하며 공부 열심히 해서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고 했다. 어려움은 있었지만 다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더 큰 사건은 다음에 일어났다. 화학선생님이 아이를 불러 왜 교장선생님께 메일을 보냈느냐고 너 때문에 나의 시간이 낭비되어 다른 일은 하나도 못했다고 아이를 질책한 것이다. 이게 가능이나 한 일인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이해도 되지 않았다. 아니 객관적으로 봐서 저 선생님의 이때까지 하는 행동으로 미루어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고 나는 속으로 욕한 마디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지만 아이에게 그렇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이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일생 처음으로 극한 상황에 몰려본 것이다. 


    이 일이 트리거가 된 것 같았다. 그다음부터 소화가 안된다고 했다. 가지고 간 소화제를 먹어보라고 했는데 그래도 거북하다고 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소화 불량인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생각했다. 소화가 안되니 음식물을 섭취하기 힘들고 그러다 보니 힘이 없고 의욕이 떨어지고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원서내고 2주 뒤 브리스톨에서 오퍼가 와서 이제는 안심이 되니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아이의 스트레스는 해소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인지 인지를 하지 못했고 아이를 더 다독여 주고 안아줬어야 되는데 더 독려하고 그냥 넘기라고 한 내가 너무 원망스럽고 너무 미안하다.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처음에 상처가 덧나지 않게 조치를 했으면 이렇게 까지 깊게 곪지는 않았을 텐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유학을 보내지 말걸, 태국에서 계속 공부할걸 등등... 하지만 지금이라도 상황을 파악하고 아이의 상태를 알게 되었고 그래도 최종 시험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극복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려 한다. 괜찮아질 것이다. 아무렴~


    

매거진의 이전글 딸이 돌아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