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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 May 01. 2023

일주일이 지났다

로봇이 아니야

영국으로 돌아간 지 일주일이 지났다. 

도착하고 하루 이틀정도는 이것저것 짐 풀고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듯하다. 거의 일상적인 대화를 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통화를 했다. 혹시나 심기를 건드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는데 큰 기복은 보이지 않은 것 같아 내심 안도한다.


며칠이 지나니 조금씩 분위기가 달라진다. 처음 통화하는 10분, 20분 언저리는 그럭저럭 지나가는 듯하다가 어떤 특정 사안이 돌출되어 나의 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하면 갑자기 싸~한 느낌이 들면서 얘기가 끊어진다. 별내용 아닌 것 같은데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하는 듯하여 뭔가 맘이 편치 않구나 느낀다. 가까스로 참고 있던 불편한 생각들이 나의 말 한마디에 트리거가 되어 스멀스멀 올라오다 최대한 자제하고 지탱하던 밧줄이 툭~하고 끊어져 버리는 것이리라. 미주알고주 얘기 하지 않지만 안다. 힘들다는 말을 돌려서 말투와 행동에서 느낄 수 있다. 꼭 이래야만 하나 하는 섭섭한 생각이 잠시 들기도 하지만 아직 내가 부족해서 이런 맘이 드는구나 자책한다. 그러지 말걸. 좀 더 참고 잘 들어줄걸. 

예전 같으면 나도 화가 나서 말다툼을 하거나 토라져서 소리를 지르거나 했겠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아이가 힘들어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도와줄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내가 버티고 중심을 잡으며 아이를 어루만져야 된다고 마음깊이 새긴다. 나는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보다 아이의 감정을 보듬어 주고 참고 인내하며 후회하지 않을 행동을 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힘들다. 나도 감정을 가진 사람이지 않나? 사람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확 변하겠나?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을 가진 동물인 인간이, 로봇도 아니고 퀀텀 점프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0과 1 두 가지로 표현하기엔 아무리 잘게 쪼갠다고 해도 디지털은 디지털이고 아날로그는 아날로그인 것이다. 메울 수 없는 공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공간의 큰 의미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로봇이 아닌 사람이니까.


로봇에게 한 계단을 오르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작업이 필요한가? 

이족 인간형 로봇의 계단 오르기.

1. 계단의 높이를 인지한다.

2. 다른 기관들의 밸런스를 맞춰 한쪽 다리를 높일 수 있도록 중심을 잡는다. 

3. 한쪽 로봇의 발을 계단의 높이보다 더 높이 들어 올린다. 

4. 들어 올린 다리를 계단 위에 내려놓는다.  

5. 내려놓은 다리가 지지가 될 수 있도록 무게 중심을 잡는다.

6. 다른 쪽 다리를 계단의 높이보다 더 높이 들어 올린다. 

7. 들어 올린 다리를 계단 위에 내려놓는다.  

8. 계단의 개수만큼 되풀이한다.


이 모든 과정을 인간은 특별한 인지 없이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지만 로봇이 계단을 오르게 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명령을 세세한 단계로 순서대로 지시해야만 한다. 그냥 길을 걷거나 계단을 오르는 행위가 이토록 힘든 작업이었단 말인가? 길을 가다가 힘들게 천천히 걸어가는 어르신들을 볼 때면 우리가 의례히 하는 일상적인 행동들이 얼마나 많은 단계를 거치며 강한 에너지가 필요한 행동인지 인지하게 되는 것처럼.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나의 마음을 전달하기 그 행위가 그냥 일상적으로 특별한 노력 없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갓난아기가 첫걸음을 내딛게 될 때까지 1년의 긴 기다림이 필요하듯이 그것보다 더한 작업의 과정과 노력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쉽게 그렇게 되는 게 아닌 것이다. 


세계의 중심은 '나'이고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대부분 사람들이 믿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아는 순간 그 괴리감에 잠시 놀라긴 한다. 살면서 많은 걸 경험하다 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안도를 하기도 하고 죽을 것 같이 힘든 상황이 닥쳐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네 하고 넘겨버릴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과 구체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통계를 내보면 꼭 내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고 확률적으로 반반의 가능성은 있기에 내가 믿는 방향으로 가능성은 더 커져간다는 것도 알게 된다. 정확한 근거와 축적된 데이터는 마음의 위안을 위한 중요한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우리는 한없이 부족하고 나약한 인간이기에...

그런데 여기에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가는 순간, 나의 가족일, 내가 하고 싶은 일 등의 사사로움이 들어가면 데이터는 사라지고 내가 믿는 대로 되기만을 위하게 되며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어진다. 모든 일을 판단할 때 통찰과 도덕성, 객관적 마인드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사실이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되는데, 아는데, 그래야만 되는데 잘 안될 때가 많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조금씩은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하루를 놓고 보면 변화가 없어 보일지라도 길게 일주일, 한 달, 일 년 더 큰 차트를 그리다 보면 어느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우하향 그래프이면 좀 더 길게 내다보며 방향전환하길 기다릴 것이고 우상향 하는 그래프이면 꾸준히 더 올라가도록 기대할 것이다. 내가 맞닥드려야 하는 어느 짧은 순간의 상황은 내가 원치 않은 모습일 수도 있지만 그것 또한 나의 몫이고 내 삶의 일부로 인정할 것이다. 부정할 수도 없고 부정할 필요도 없다. 그냥 덤덤히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를 수립하고 있는 과정이다. 그것이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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