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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 Oct 27. 2022

6.2.1 업무 분장에 대한 지나가는 생각

  매년 겨울이 다가오면 동물들은 겨울잠을 통해 내년을 준비하고 학교는 업무분장을 통해 내년을 준비한다. 학교에서 ‘정치질’이라는 소리가 들려오고 서로 감정이 상하는 것도 이맘때였던 것 같다. 사정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볼멘소리들이 터져 나온다. 교감선생님은 차기 부장을 맡을 사람을 찾아다니시기도 하고, 내년도 학교를 이동할 사람들은 남 일처럼 방관하고 있기도 하다.  내가 너무 부정적인가? 교직에 들어와 지난 8년 동안 업무분장에 대해 느낀 점을 솔직하게 적어보았다.

  



  제일 많은 말이 오고 가는 시즌이다. 업무분장의 계절이 오고 있다.

  

  약 8년 전쯤, 내가 학교에 갓 발령을 받은 신규교사일 때가 생각난다. 학생으로서 학교를 많이 경험해서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교사로서의 학교는 또 달랐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고유의 일 외에 학교가 교육활동을 하는데 여러 가지 ‘업무’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직장으로서의 학교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매년 업무가 바뀔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작년에 했던 일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을 맡을 수도 있고, 어떤 일을 잘하고 못 하는지와는 크게 상관없이 배치되는 것도 신기했다.

 

  9월에 첫 발령을 받았을 때는 명퇴하신 선생님의 후임으로 들어가서 업무에 대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슬슬 학교에 적응이 되어갈 무렵 ‘내년에 뭐 할 거야?’라는 말이 여러 군데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첫 업무분장 시즌이 시작되었다. 가슴이 콩닥콩닥했다.

  ‘내가 뭘 잘할 수 있을까?’

  ‘이건 잘 모르는데, 어렵지 않을까?’

  ‘에이, 이 업무만 몰라? 다른 것들도 다 모르긴 마찬가지잖아.’

 

  업무분장 지원서에 무엇을 써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토로했더니 “어려운 거 받으면 교무실 가서 두어 번쯤 울면 돼.”라는 말을 농담처럼 들었다. 그 당시 그 말에 뜨악하긴 했지만 업무에는 누구나 기피하는 어려운 것도, 또 쉬운 것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회사처럼 어떤 실적이나 성과로 나를 증명해야 할 필요도 없기에 대부분 부담 없는 업무를 맡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또 이걸로 ‘우는(?) 선생님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학교에 근무한 지 몇 해가 지나면서 같은 업무라도 누가 맡느냐에 따라, 해마다 업무의 강도나 규모가 달라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이렇게 하면 내년에 맡을 사람은 어떻게 해.”라는 푸념 어린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이거 내년에 누가 해요?” 하고 걱정하는 목소리 옆에 또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학교 업무는 누가 와도 어떻게든 다 돌아가.”

 

  맞는 말이었다. 사실 학교 일이라는 게, 해보지 않은 분야는 해보지 않아서 모르고, 몰라서 어려울 뿐 누가 들어가도 어느 정도는 다 해 낼 수 있다는 게 내 결론이다. (8년 경력으로 감히 이렇게 말해도 되나 모르겠지만 말이다.)

 

  업무가 1/n으로 나뉘지 못한다는 것은 안다. 시즌에 몰아쳐서 바쁜 업무도 있고, 과목의 특수성을 반영해야 하는 업무도 있고, 주기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업무도 있다. 학교 폭력 사안처럼 발생하면 엄청 큰데, 발생하지 않으면 아예 없는 그런 업무도 있다. 모든 업무의 특수성이 다르지만 사실 그 안에서는 ‘누가 봐도’ 어려운 업무도, ‘누가 봐도’ 쉬운 업무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상황이기에 이렇게 업무를 나누는 것 아닌가. 업무 없이 아이들에게만 집중하고 싶은 것은 많은 교사들이 바라는 바일 터인데, 매년 업무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아지고 더 적은 사람에게 더 적어져 가는 느낌을 받는다.

 

  업무에 대해서 어필(?)하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맡은 업무의 어려운 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서로 이해하는 폭이 깊어지지 않을까? 누구나 자기 업무가 어떤 점이 어렵고, 힘든지 이야기하면서 이해받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자기가 경험한 일이 아니면 잘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특정 업무는 누가 봐도 쉬운 업무라고는 하지만, 막상 내 업무가 쉬운 업무라고 지목받으면 내가 일을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느껴져 기분이 나쁠 수 있을 것 같다. 드러나는 업무도 있지만, 두드러지지 않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바에는 모두 랜덤으로 하면 어떨까? 사다리 타기나 제비뽑기처럼 말이다. 너무 당황스러운 제안인가? 잘 생각해보면 안 될 이유도 없어 보이지 않는가? 어차피 학교 공동체 내에서 어려운 일도 쉬운 일도 누군가 맡아야 하는 거라면 매년 그 해의 운세에 맡겨보는 건...? 랜덤 추첨 아래 내가 맡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더 공정하게 업무조정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평교사와 부장교사의 자리도, 담임과 비담임도 고루고루 섞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누구나 (그 일이 내년에 내 것이 될 수도 있으니) 모든 업무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아직 어느 학교도 실천한 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기는 하지만 실현 불가능한 허황되기만 한 생각인지는 잘 모르겠다.


  많은 말이 오고 가는 시즌이다. 업무 분장의 계절이라는 것을 알려주듯 또다시 찬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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