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재 8년 차 교사다. 신규 티를 벗고, 학교에서 부장교사 보직을 제의 받는 나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부장교사 제안이 썩 달갑지만은 않다. 월급이 올라서 좋지 않으냐고? 천만의 말씀! 돈 때문에 부장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부장 수당이라고 해봐야 7만 원인데, 7만 원과는 비교할 수 없게 주어지는 수많은 일을 달가워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학교 조직에 존재하는 보직교사, ‘부장’이라는 직함은 역할이기도 하고 지위이기도 하다. 더 많은 책임을 지고, 더 많은 결재 권한을 가졌다는 점에서는 회사와 비슷하지만, 학교의 부장교사 자리는 맡았다가 내려놓을 수도 있기에 엄밀히 말하면 ‘승진’이 아니다. 1년 단위씩 부장을 했다가 하지 않기도 한다. 심지어는 아무도 맡고 싶지 않아 하는 상황도 종종 벌어져서 학기 말이 되면 교감선생님께서 내년도 부장교사를 맡을 사람을 구하러 다니기도 하고 ‘부장직을 부탁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아무도 안 맡고 싶어 하지만 조직 운영을 위해 필요한 동아리 회장 같은 느낌이랄까.
내가 안 해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 아니, 하게 된다. 이런 나의 상황을 두고 여러 조언을 들었다.
“이번 학교에서 부장 경력이 있으면 다음 학교에서도 빼박이야(빼도 박도 못해). 최대한 피할 수 있을 때까지 피하는 게 낫지.”
“승진 생각이 있으면 빨리 해. 젊을 때는 생각 없어도 나중에 주변에 다 승진하는 거 보고 승진 생각이 나서 그때 부장 처음 하게 되면 너무 늦더라.”
“어차피 한 번은 하게 될 건데, 언제까지 피할 수도 없으니 그냥 해봐.”
“부장직 수락할 때 하더라도, 업무 조정이나 수업시수 조정 좀 해달라고 해.”
나는 학교의 이런 상황을 보며 부장의 필요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적이 있다.
‘부장 없이 다 같이 일을 나누어서 하면 되지 않을까.’
‘학년 일이야 나누어서 하면 되는 거지. 부장 회의에서 정해지는 것들은 전체 회의를 통해 결정하거나, 학년별로 의논해야 하는 사항은 교장, 교감선생님께서 학년 전체에 전달하면 되지 않나. 그렇게 다들 싫다는데 부장이 있어야만 할까.’
그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있다. 올해 내가 맡은 학년에는 학년 부장이 없다. 학년부장이 없을 정도면 작은 학교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 학년에 5~6개 반이나 되는 작지 않은 학교이다. 현재 우리 학년에서는 학년 초에 정했던 것에 따라 학년 일은 나누어서 하는 중이고, 새로 생겨난 일들은 서로 나서서 하는 중이다. 서로 의논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함께 모여 결정을 한다. 역할 분배가 잘 이루어지고, 겉보기에는 잘 굴러가고 있지만 사실 내 속마음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일, 관계 혹은 그 이상의 것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 나를 제일 막막하게 만든다. 어떤 책임자가 없으니 어떤 반에서 어려운 일이 생겨도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며, 누군가 섣불리 조언을 해주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또한 컨트롤타워가 없으니 그 누구도 무엇을 어떻게 하자고 또는 하지 말자고 나서기가 어려워져 서로 눈치만 보는 시간이 반복된다.
여태까지는 우리 반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너무 힘들거나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는 문제들을 직면했을 때,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부장교사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했다. 부장님들은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학교 차원의 해결책을 제시해주시기도 했다. 또는 교장, 교감선생님과 상의하여 내가 시도해보고 싶은 일을 지원해주시기도 했다. 내가 그렇게 조언을 구하는 동안 심적인 부담감과 책임감을 짊어져야 하는 부장교사는 얼마나 버거웠을까. 무거운 짐을 오롯이 짊어졌던 부장님들께 새삼 고맙다.
어떤 부장님께서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부장’은 무엇이냐고.
“제가 아이들과 해보고자 하는 일을 함께 고민해주고, 지지해주시면 좋겠어요. 부장님의 경험을 함께 나누어주시면 좋겠어요.”
“그런데 모든 사람이 선생님처럼 의욕적이거나, 뭘 하고 싶어 하지는 않아요. 그럴 땐 부장이 자신의 뜻대로 뭔가 하자고 하면 그건 좋은 부장인가요?”
“음....”
“그럼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합하고 전달하기만 하면 되나요? 부장은 대표자인가요?”
“음.....”
조직이 효과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책임을 지고, 한 번 더 검토하고, 의견을 수합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그런 역할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부장교사는 학교에 필요한 존재다. 학교는 회사처럼 직급이 올라가지 않으면 도태되는 체제가 아니다. 그게 아니라면 부장교사는 일을 더 하고 책임을 더 지는 자리밖에 되지 않는데, 누가 그 역할을 기꺼이 맡겠는가. 나는 부장교사가 학교에서 의미 있는 존재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서로 존경하고 인정하는 분위기이기를 소망한다. 자리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돌아가면서 공동체에 기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내가 부장교사를 맡게 된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고민이 된다. 사실 나에 대한 확신도 없다. 학년 부장? 자신이 없다. 나보다 경력이 많고, 교육철학이 뚜렷한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내가 조율할 수 있을까. 예전에 내가 우리 반 학생과의 관계에 대해 조언을 받은 것처럼 내가 과연 그런 현명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일까. 그렇다면 특수 부장? 부서의 업무를 파악하고, 추진하고, 총괄해야 하는데 그런 넓은 식견이 나에게 있었던가. 우리 학급의 일만으로도 허덕이는 나인데! 교육관도 정립이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부장이라니. 교직에 들어올 때 학생들을 상대하는 교사 개인으로서의 교육활동만 생각하고 들어왔지, 부장 교사로서 내 역할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언제까지나 부장 보직을 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건, 학교에 도움이 되는 존재이고 싶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임용고사를 통과해서 교사가 되었는데 학교에 들어와 보니 직장 동료와의 또 다른 사회가 펼쳐져 있었다. 학교라는 조직 속에서 교사가 한 일원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좋은 교사이고도 싶지만, 좋은 직장 동료이고도 싶다. 선배 교사들이 나에게 실수해도 괜찮다며 하고 싶은 활동을 해보라고 보내주셨던 응원, 어려울 때 나누어주셨던 경험담, 학교 업무 체계에 대한 지식 등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듯이 나도 후배 교사들에게 그런 역할을 해주고 싶다. 또, 내가 학교의 체계를 조금 더 거시적인 틀에서 바라보고 나면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감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 어려운 역할을 맡아서 했으니 나도 한 번쯤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책임감에 고민하고 있다.
교사에게 학교는 직장이다. 너무 당연한 말인가? 직장에서는 좋든 싫든 해야 하는 역할이라는 것이 있는 거고, 나 역시도 그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고민하는 것뿐이다. 다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고, 더 많은 일과 책임을 가져야 하는 역할이기에 해보지 않은 입장으로서 조심스럽고 여전히 두렵다. 선배님들, 다들 저와 같은 단계를 거쳐서 멋진 선배가 되신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