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경력 5년 차,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부장 교사 제의를 받았다. 나는 교감 선생님께 정중히, 그리고 단호하게 거절을 하였다. 이유는 부장 교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이 부족하였으며, 너무나 큰 부담감과 책임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 당시에는 참으로 눈앞이 캄캄하고 머리가 어질어질하였다.
부장 교사는 학교 관리자(교장, 교감)와 교사와의 중간 관리자로서 이들의 사이에서 소통을 원활히 하여 학교 업무를 추진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부서의 업무를 계획, 총괄하며, 각 부서들 간의 업무를 조정하고, 어쩔 수 없이 부서원들에게 업무를 지시하기도 하는 자리이다. 또한 학생, 학부모, 교사, 교감, 교장과의 원활한 관계를 형성하고, 그들의 요구에 부합할 수 있도록 부서를 이끌어 가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한다. 즉, 학교경영의 참모 역할, 교무업무 수행의 총괄 역할, 부서의 리더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직책이다. 부장교사는 학교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준비된 상태에서 부장 업무를 맡게 되는 교사는 거의 없다. 부장교사가 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보편적으로는 경력이 되었기 때문에, 부서의 기획 업무를 맡았기 때문에, 그 학교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반대로 그 학교에 처음 오기 때문에 등의 이유로 부장교사를 떠맡게 되는 경우가 많다.
부장 교사의 역량을 갖추지 못한 나는 부장 교사를 하면서 몇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부장 교사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고 어디선가 고생하고 있을 부장 교사에게 힘이 되어 드리기 위해 내가 겪었던 어려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부장 교사를 하면서 매 순간 눈치를 살펴야 했다. 부서 선생님들 중에 표정이 어둡거나 컨디션이 별로인 선생님이 계시다면 무슨 일이 있는지, 무엇을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몰라 그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며 하루를 보냈었다. 부장 회의 시간에는 교감, 교장 선생님의 눈치를 살폈다. 만약 교감, 교장 선생님의 표정이 어둡다면 고개를 숙이고 나의 의견은 최대한 말하지 않았다. 교육청으로부터 업무가 배정되었을 때, 그 업무가 어떤 부서의 업무인지 명확하지 않다면 다른 부장 선생님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 업무가 우리 부서로 배정될까 봐 걱정을 하며 회의 내내 긴장을 하게 되었다. 부서 회의 시간에 업무에 대한 협의를 할 때면 부서 선생님들의 눈치를 살폈다. 협의는 만장일치로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며, 한 선생님의 의견이라도 존중하고자 하였다. 이로 인해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회의가 길어지면 또다시 부서 선생님들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루 종일 눈치를 살피다 보면 나는 점점 없어지는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
둘째, 부장교사로서 역할 갈등을 겪었다. 부장 교사는 교과 수업을 마치고 오면 각종 회의, 간담회, 협의회에 참석하고, 부서 업무 결재 및 부서 선생님들과 업무 협의, 각 부서 부장님들과 업무 조율, 교감, 교장 선생님과 회의 등으로 인해 정작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들과 마주할 시간이 부족하였다. 가끔 부장 업무로 인해 바쁠 경우에는 부장인지 교사인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교사라면 수업을 어떻게 할지, 학생들과 관계를 어떻게 맺을지 등을 고민해야 하지만 정작 수업과 학생은 뒷전이 되고 부서 업무와 부서 선생님에게 더욱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되었다. 난 학교 업무를 하는 부장인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인가? 헷갈렸었다.
셋째 부장교사로서 무한한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부서 업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업무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고, 부서 선생님들에게 각자 역할을 구체적으로 안내해야 하며, 교감, 교장 선생님께 업무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가끔 새롭게 추진하는 업무의 경우에는 부장 교사인 나도 제대로 업무파악을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럴 경우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었다. 시행착오를 겪을 때마다 동료 교사, 교감, 교장으로부터 다양한 의견, 조언, 충고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잘 해야 해. 완벽해야 해. 실수하면 안 돼!”라고 속으로 계속 말하곤 했다.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교육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무한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업무량이 많은 것은 아닌데 매일 피곤하고 여유가 없었다.
넷째, 부장 교사를 하는 동안 외로웠다. 일반 교사일 때는 부서 선생님들과 다양한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었고, 장난도 치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나 부장교사가 되니, 나의 교육철학과 의견을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졌으며, 장난을 치는 것도 어려워졌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들어오면 즐겁게 차를 마시고 있는 선생님들이 갑자기 일을 하러 가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 때는 괜히 부장 교사인 내가 들어와서 일어서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부서 회식 날에는 선생님들과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고민이 되고, 꼰대 부장처럼 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불편하였다. 일반 교사일 때처럼 선생님들과 커피 한 잔 하며 즐겁게 수다도 떨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고 싶었지만 부장 교사니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준비가 되지 않은 부장 교사를 하면서 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잔뜩 긴장을 했었다. 그 긴장으로 인해 부장 교사가 더욱 어렵게만 느껴졌던 거 같다. 근데 교육 경력 10년 차인 지금도 부장 교사는 기피하고 싶다. 그러나 학교에서 부장 교사는 꼭 필요한 존재이기에 누군가는 부장 교사를 해야 한다. 그러면 누가 부장 교사를 하면 좋을까? 이 질문보다는 우선적으로 부장 교사는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부장 교사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이 있을까? 내가 부장교사의 어려움을 덜어 주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등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일반 교사와 관리자의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대한민국 부장 선생님들, “파이팅입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