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교사 시절, 학교폭력이 발생하여 어떻게 지도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선배 교사는 나에게 학교폭력 대응 매뉴얼을 주셨다. 이 매뉴얼에는 학교폭력이 발생하였을 경우, 사안처리 흐름도, 관련 학생 조치 방법, 행정업무 처리 방법, Q & A, 각종 양식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이 매뉴얼을 숙지하였으며,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이 매뉴얼을 토대로 업무를 처리하였다. 그러나 이 매뉴얼이 교사를 보호할 수 있으나, 교육활동을 방해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학교폭력 대응 매뉴얼은 많은 전문가들이 모여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랜 시간 동안 심사숙고하여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완벽한 매뉴얼이며, 그 매뉴얼대로 따라 한다면 교육의 효과성과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그 매뉴얼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았었다. 우리 학교에서, 우리의 학생들에게, 지금 현재의 상황에 적합한 매뉴얼인지 고민해 보지 않고 그 매뉴얼대로 지도하고 업무를 처리하였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면 학교폭력 대응 매뉴얼에 나와 있는 부분 이외의 방법으로도 더욱 효과적으로 지도하고,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뉴얼에만 집착했었다. 왜냐하면 학교폭력 대응 매뉴얼대로 업무를 처리하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 민원이 발생하고, 심지어 징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학년 초 업무가 배정되고 나면, 해당 업무와 관련된 매뉴얼을 숙지한다. 매뉴얼에 따라 선생님들에게 공지하고, 매뉴얼에 따라 업무를 처리해 나간다. 선생님들께서 질문을 한다면, 매뉴얼을 찾아보고 답변을 하며, 매뉴얼에 없는 내용이라면 장학사에게 문의를 한 후 답변을 한다. 만약 장학사에게 명확한 답변을 받지 못하면, 명확한 답변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이로 인해 점점 해당 업무와 교육에 대한 고민을 적게 하게 되고,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매뉴얼 없이 교육과 업무를 하는 것은 불안한다.
만약 학교에 배포된 매뉴얼에 문제점이 있다면 어떨까? 상황에 적합한 매뉴얼이 아니면 어떨까? 그 문제점을 알고도, 상황에 적합한 매뉴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뉴얼대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맞을까?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사건처럼 급박하고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매뉴얼을 찾고, 관리자의 명령이나 허락을 구하며 기다려야 할까? 매뉴얼은 개인의 책임을 모면해 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 상황에서 최고의 대처 방법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사에게 배포되는 매뉴얼에는 매뉴얼을 만들게 된 배경, 목적, 과정이 기록되어 있고, 현장에 있는 교사의 의견이 반영되어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매뉴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교사들이 함께 고민하고, 현 학교의 사정에 적합하도록 수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결국 매뉴얼은 교사들에게 교육활동의 방향과 방법을 제시해 주는 지도이며, 지도를 보며 길을 가는 것은 교사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