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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Mayfeng Dec 11. 2017

국경의 새벽

쥴리 메이펑의 사진이 된 순간들 #018

Indo-Nepal border. Dawn. ⓒ Julie Mayfeng






Indo-nepal border. 2011.




2011년 12월 겨울, 인도와 네팔 국경에서 찍은 사진이다. 어디서든 안개 낀 풍경은 나를 사로잡는다. 새벽 거리를 서성이는 저 사람들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이고 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유랑민족 집시(Gypsy)*가 떠올랐다. 나는 릭샤 위에 앉아 스치는 풍경들을 사진에 담았다. 초점이 허공으로 가버렸지만, 그럼에도 이 사진이 좋다. 그 날의 내 마음, 내 감정이 잘 스며있다.  







국경 도시로 가는 길은 춥고 길었습니다. 나는 버스 왼편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국경행 버스는 초만원이었고, 사람들은 좌석이 아닌 공간에도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잠에 취한 승객들은 자신의 손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한 네팔인 승객은 자신의 정수리를 버스 앞쪽 유리로 향하게 한 채, 버스 맨 앞자리 중앙에 누워 갔습니다. 그의 손은 일행의 배와 다리 근처에서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의 손의 행방을 감시하는 것으로 내 밤의 절반은 가 버렸습니다.



무릎이 있는 자리에 구멍 하나가 크게 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곧 뼈를 뚫을 듯한 시린 바람이 파고 들었습니다. 입고 있던 바람막이를 벗어 무릎을 꽁꽁 묶고, 그 위로 스카프를 둘렀습니다. 산길은 안개에 휩싸여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지만, 운전수는 긴장한 기색도 없이 아주 리드미컬하게 운전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붙일 수도 없고 괴로움을 호소하고 싶어도 들어줄 이 없는 밤이었습니다.



버스는 산중에서 두 번을 멈춰 섰습니다. 승객들은 볼 일을 보기 위해 내렸고, 나도 내렸습니다. 백열전구 하나가 켜진 네팔의 깊은 산중에서 적당한 장소를 스스로 찾아 일을 치러야 했습니다. 헤드라이트가 켜진 차의 앞쪽은 너무 밝았고, 차의 뒤쪽은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두리번거리다가 문 닫은 가게 옆쪽으로 난 조그마한 공간을 발견하고 다람쥐처럼 쏙 들어가 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시커먼 그림자가 나를 가렸습니다. 깜짝 놀라 얼른 걸음을 뗐는데, 갑자기 그 검은 그림자가 내 가슴 부분을 고의적으로 스쳤습니다. 나는 '으악'하고 소리를 지르며 도로 위로 나왔지만, 나의 소리는 마치 산에서 작은 짐승을 만난 여자의 짧은 비명으로 여겨진 듯 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버스에 올랐지만,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는 않았습니다.  



버스는 여덟 시간 쯤 달려 네팔 측 국경도시인 바이라와(Bhairahawa)에 도착했습니다. 이전에 와 본 적 있는 곳이지만,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새벽은 낯설고 무서웠습니다. 이민국이 있는 소나울리(Sonauli)는 거기서 4k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비가 흩뿌리는 바람에 망설임도 잠시, 떠밀리듯 릭샤에 올랐습니다. 오르고 보니 후회가 될 정도로 깜깜한 새벽이었습니다. 옆 사람 얼굴조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간간이 사람들이, 나무들이, 불빛들이 나타났다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보일 때면 안도감이 들다가도 다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면 불안했습니다. 핸드폰의 후레쉬를 켜서 이동 중인 방향으로 비추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했습니다. 20여분 후에 릭샤는 무사히 이민국에 도착했습니다. 직원 한 명이 모기장을 치고 책상 위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문을 두드렸고, 한참 후에 눈을 뜨더니 깔아둔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12월 7일, 네팔 이미그레이션의 첫 번째 손님, 출국신고서를 작성하고 출국도장을 받았습니다. 국경은 안개로 가득했습니다. 거기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까지는 또 다시 네 시간을 가야했습니다. 




*집시: 집시라는 말은 이집트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유럽인들은 그들이 이집트에서 온 줄 알고 그렇게 불렀다. 실제로 집시는 이집트가 아닌 인도의 유랑 민족으로, 인도 북서부에서 전세계로 흩어졌다. 롬어(Romany)를 쓰는 유랑민족 로마니(Romany, Romani)는 어쩌다 잘못 붙은 이름인 '집시'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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