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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Mayfeng Jul 24. 2017

기차여행

쥴리 메이펑의 사진이 된 순간들 #007

SRI LANKA. Nanu Oya. Travel by train. ⓒ Julie Mayfeng






스리랑카 나누오야. 2012.




스리랑카에는 열흘 남짓 머물렀다. 몇 군데 가고 싶은 도시들이 있었고, 대충 루트를 만든 후 수도 콜롬보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돌았다. 두번째 인도 여행을 마친 직후였다.



여행 중반 즈음에는 힐컨트리(Hill Country)에 있었다. 나는 엘라(Ella)─세계 3대 홍차가 생산되는 우바(Uva) 주의 산간 도시─로 가는 길에 누와라 엘리야(Nuwara Eliya)─해발고도 1,868 m에 위치한 차 산지─라는 도시에 들르게 되었다. 차를 바꿔 타기 위해 잠시 내렸는데, 그곳 풍경을 보자마자 쉬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결국 엘라는 다음 날로 미뤄 두고 그곳에 숙소를 구했다.



여장을 푼 곳은 힐클럽(Hill Club)이라는 호텔이었다. 실론(Ceylon)* 시절에 지어져 영국인들─커피나 차, 기나수를 기르는 농장주들─의 프라이빗 클럽하우스로 이용되던 곳이었다. 벌꿀색의 나즈막한 건물에서 내가 좋아하는 잉글랜드의 전원마을, 코츠월드(Cotswold) 냄새가 났다. 비는 거의 종일 내렸고, 나는 우산을 쓰고 산책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마을 곳곳에는 영국풍 건물들이 즐비해 있었다. 인도 쉼라(Shimla)나 다르질링(Darjeeling)과 그 느낌이 겹쳤는데, 재미있게도 누와라 엘리야와 쉼라 모두 '작은 영국 Little England'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 도시들의 공통점이 높은 고도로 인한 서늘한 기후였다. 그래서 영국인들의 휴양지가 되고, 여름 수도와 차 밭이 조성되지 않았나 싶었다.



모처럼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도 하고, 좋은 식당에서 따뜻한 음식도 먹었다. 하지만 여행의 남은 날들이 줄어들수록 아직 사진의 순간을 못 만났다는 것은 내겐 적지 않은 괴로움이었다.



비는 다음 날도 추적추적 내렸다. 아침 산책을 다녀온 후, 누와라 엘리야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나누오야(Nanu Oya) 역으로 이동했다. 해발고도 1,623m 높이의 역이었다. 무거운 배낭을 바닥에 내려두고 엘라행 기차가 올 때까지 플랫폼을 서성였다. 그러다 반대편에 정차해 있는 기차를 보게 되었다.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찾아온 사진의 순간이었다.



처음에 내 눈길을 끈 것은 짐 칸에 적힌 노란색의 글씨였다. 알파벳 대문자로 쓰여진 'LUGGAGE'라는 글씨는 향수를 자극하는 옛날 영화 포스터 속 글씨 같았다. 그 후 나의 시선은 자연스레 바로 옆의 객차로 옮겨 갔는데, 그곳에 사진 속 가족이 앉아 있었다. 인사를 나누면서도 내 시선은 흑단처럼 검은 눈동자에 붙들려 있었다. 이번엔 망설일 틈도 없었다. 버릇처럼 숨을 꾹 참고 셔터를 눌렀다. 기차가 떠나버리면 누를 수 없는 셔터였다.






*실론(Ceylon): 18세기 말부터 영국 식민지였다가 1972년 국명을 실론(Ceylon)에서 스리랑카공화국으로 바꾸고 영국연방에서 완전 독립했다. 정식 국가명칭은 스리랑카민주사회주의공화국(Demo-cratic Socialist Republic of Sri Lanka)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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