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lie Mayfeng Jul 31. 2017

하벨리 여인들

쥴리 메이펑의 사진이 된 순간들 #009

INDIA. Jaisalmer. Women in Haveli. ⓒ Julie Mayfeng






인도 자이살메르. 2009.




그때는 디왈리(Diwali)* 시즌이었다. 그 전날 나는 사막에 있었고, 축제가 눈으로 보인 건 그날이 첫날이다. 그날은 축제의 다섯날 중에 두번째 날이었다. 여인들은 아침 일찍부터 랑골리(Rangoli)라는 그림을 그렸다. 색색의 가루로 정성스럽게 그린 그 그림은 꽃을 연상케하는 기하학적인 무늬였는데,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고, 지혜와 풍요의 여신 락쉬미(Lakshmi)를 환영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무늬 가운데 디프(deep)*를 놓고 불을 밝혔다. 장식은 집집마다 조금씩 달랐지만─소똥으로 그림을 그린 집도 있었고, 과자를 그 위에 꽂아두거나, 과자만 따로 스테인레스 접시에 담아 둔 집도 있었다─그것을 장식하는 여인들은 하나같이 정갈하고 깨끗하며, 의무로써가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 행하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빛의 축제답게 폭죽은 밤낮으로 터졌는데, 그 날 오후, 성 밖에서 마주친 골목은 마치 전쟁이라도 한 차례 겪은 듯, 허물처럼 널린 폭죽의 잔해들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나는 나흘째 자이살메르 성 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며칠째 컨디션이 좋지 않아 거의 물만 마셨다. 그날 밤에는 또 다른 도시로의 이동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움직이려면 잘 먹어야 했고, 그래서 찾아가게 된 식당이 이 하벨리(Haveli)─인도, 네팔, 파키스탄 등지의 귀족들이 살던 저택─안에 있었다.



식사 후 정원을 들러보는데 한 아이에게 눈길이 갔다. 오렌지색의 예쁜 사리를 입은 소녀가 그네에 앉아 있었다. 명절날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러 온 귀여운 손녀의 모습이었다. 곧 아이의 가족들도 보게 되었다. 야외 응접실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옷차림이나 태도로 보아 손님은 아닌 듯 했다. 그들이 앉아 있는 응접실 벽에는 선조들의 사진들을 비롯해 집안의 역사를 보여주는 가문의 문장 같은 것들이 붙어 있었다. 아무래도 그들은 이 하벨리와 연관이 있거나, 어쩌면 마하라자(인도의 왕에 대한 칭호)의 후손들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물어보진 않았다.



대신 노란 벽 앞에 나란히 앉은 세 여인을 마주하고는 꼭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화가들이 그렸던 서로 다른 '세 명의 여인들'이 떠올랐고, 이 또한 내게는 명화적인 장면이었다. 여인은 사진을 허락했고, 나는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셔터를 눌렀다.



후에 내가 이메일을 보내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들은 자이살메르를 세운 마하라왈 자이살 싱(Maharawal Jaisal Singh)의 후손들이었다. 그리고 사진 속 가운데 앉은 여인은 이 가문의 딸이었다.







*디왈리(Diwali): 우리의 추석과 설의 개념을 한데 지닌 인도의 큰 명절로, 시기는 힌두력에 따라 매년 바뀌지만 보통 10월과 11월 즈음이다. 디왈리는 디파발리(Deepawali)에서 온 말이다.


*디프(deep)와 디파발리(Deepawali): 인도에서는 흙으로 만든 종지에 심지를 넣고 기름을 부어 불을 밝힌다. 그것을 디팜(deepam) 혹은 디프(deep), 디아(diya)라고 부른다. 모두 등불(lamp), 그러니까 빛(light)이라는 뜻이다.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한 디파발리(Deepawali)는 곧 '빛들의 행렬'을 의미한다. 참고로, 'Deepa(दीपा)'나 'Deepti(दीप्ति)' 처럼 이름에 '디프(deep)'가 들어있으면 모두 빛의 의미를 지닌다.







매거진의 이전글 눈이 사는 곳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