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싯적, 음주가무가 흥행하던 시절 얘기다.
적어도 1주일에 한 번은 회사일이 끝나면 부장의 엄명 아래 열외 없이 저녁 자리로 향했다.
주식(主食)은 폭탄주, 술에 흥건히 젖어들면 2차는 으레 노래방이었다. 1번 가수는 당연히 부장.
마이크를 잡고 흥겹게 부르셨던 노래가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였다.
"궂은비 내리던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30대 감성으로 약간 올드하다고 느꼈던 노래. 나는 그 노래가 지천명(知天命)의 문턱을 넘어서면서 중년 남성의 심금을 울리는 한국 가요의 백미임을 깨달았다. 어떤 기교도 없는 담백한 노랫말과 남미의 탱고 음악을 듣는 듯한 멜로디. 지금도 자동차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괜스레 감상에 젖어 함께 흥얼거리게 된다.
<낭만에 대하여>는 최백호 선생이 규정한 낭만에 대한 상징어가 있다.
다방, 마담, 도라지 위스키, 항구, 연락선, 선창가, 첫사랑 소녀, 슬픈 뱃고동..
단어 하나하나가 이미지가 강한 언어다. 낭만적이다라는 사전적 의미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낭만적이다'라는 말은 그 자체가 낭만적이다.
언어라는 게 실체를 온전히 담을 수는 없다. 노자도 도덕경에서 '名可名 非常名(명가명 비상명)'이라 했다. 대상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의미는 한정된다. 그래서 역으로 여지가 생긴다. 그 여백 속에 상상이 숨 쉴 공간도 마련된다. 누구나 개개인이 생각하는 언어의 이미지와 함축적 의미는 다를 수밖에 없다. 각자의 다방과 각자의 위스키, 실연, 청춘이 있는 이유다.
창밖으로 어둠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가로등이 보이고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이 하나둘씩 등을 켠다. 평범하지만 낭만적인 풍경이라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추억을 더듬으며 산다. 산 날이 살 날보다 길다. 낭만은 감상적 회상과 잘 버무려진다.
"이제아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