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자의식을 갖고 있다. 스스로 존재를 인식하고, 그 근원에 대해 질문을 한다. 나는 누구이고, 왜 존재하는가?
존재가 존재 이유를 궁금해한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존재라는 것은 정말 '신비한 그 무엇'이다. 인간 같은 지적 생명체는 차치하고, 우주 속에 떠도는 작은 물질 하나도 그냥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아무것도 없는 상태(無)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새로운 뭔가가 생기는 상태(有)로 발전하는 것보다 더 수월했을 테니까. 그런데 어쨌든 세상은 존재하고 나도 존재하고 있다.
우주의 탄생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존재의 연속성은 확률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여겨진다. 138억 년 전 태고 때부터 존재의 끈이 단 한 번도 끊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흥미로움을 넘어 경이로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빅뱅이 일어나고 수소 원자가 생기고, 이로 인한 존재의 연속성이 아무런 단절 없이 나에게까지 이어졌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138억 년 동안 존재의 연속성이라는 끈에서 단 한 번도 비켜나 있지 않았다. 인간 개개인이 우주를 담고 있는 기적인 이유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동일한 조상을 뿌리로 두고 있다. 우리가 별에서 왔고, 별로 돌아간다는 말도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다. 별이 생기고 흩어지며 수많은 항성과 행성이 다시 만들어졌고, 지구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 지구에서 생명의 싹이 텄다.
눈을 감고 한번 상상해 보자. 나의 사진 위에 아버지 사진, 그 위에 할아버지, 증조, 고조할아버지 모습이 찍힌 사진을 쌓아놓은 모습을... 이렇게 세대 별로 찍은 조상의 사진을 1,000여 장 쌓아둔다면 맨 위쪽 사진에는 어떤 배경이 찍혀 있을까? 한 세대 30년을 기준으로, 사진 1,000장이면 대략 3만 년 전이다. 우리 조상은 아프리카 어디인가에 머물렀을까, 아니면 중앙아시아 초원의 어디쯤에서 유목생활을 하고 있었을까?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만 년 전 선조들은 아프리카 탄자니아 사바나 위를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과거를 향해 시간 여행을 떠나면 어느샌가 우리 조상은 작은 포유류로 살고 있고, 바닷속을 헤엄치는 어류가 되며, 원시 지구에 떠다니는 단세포, 종국에는 수소 원자의 모습까지 띠게 될 것이다.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가 동일한 조상에서 시작됐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웃집에 사는 사람, 산책로에서 우연히 마주친 애완견, 도로변에 심겨 있는 은행나무...이 모두가 먼 옛날에는 우리와 같은 조상이었을 것이다. 우리 주변의 모든 존재는 나의 존재와 연결돼 있다. 기독교에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 것이나 불교에서 ‘함부로 살생하지 말라’고 한 가르침은 생명체 탄생에서 우리 존재까지 이어지는 관계를 이해하면 생생하게 와닿는 지점이다. 나와 내 이웃은 물론이고, 내 주변의 이름 모를 풀과 작은 곤충도 함부로 가볍게 대하면 안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