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마음의 물결

by 풍뎅이

이제는 지난 일이 됐지만 오랜 시간 마음이 어지러웠던 적이 있다. 당시는 신문이나 책을 읽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갑작스러운 회사 퇴직 결정으로 생각이 많아지는 와중에도 막바지 처리해야 할 회사 일 때문에 이래저래 바빴다. 결국 공적 소유였던 회사는 민간기업에 넘어갔고 나의 거취도 연동되었다. 세상일에 대해 나름 담담히 대하는 힘이 있다고 믿었는데 이 또한 오판임도 깨달았다. 삶은 하나하나가 구체적이다.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생각과 막상 현실이 됐을 때의 그 틈을 좁히기가 쉽지 않다.


2024년 3월 말, 주주총회 업무를 끝으로 30년 언론사 일을 마쳤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운명 같은 일이라 생각했다. 애초는 주총이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당일 오전에 마음이 바뀌었다. 그냥 집으로 가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컸던 모양이다. 주총을 마치고 몇몇 동료들과 회사 앞에서 점심을 함께했다. 와인도 한잔 곁들였다.


나는 기본적으로 삶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해 왔다. 그래서 어떤 일에 대해 실망하는 일도 비교적 적었다. 설령 실망했다 하더라도 유통기한이 짧은 편이다. 그런 면에서 그동안 큰 틀에서 삶을 잘 대처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나를 감싸고 있던 하나의 세계가 순식간에 사라진 느낌이었다. 막연한 그 무엇이 앞에 가로막혀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을 살면서 객관적으로 벌어지는 일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이 별개임에도 마음에서 구분 짓기가 쉽지 않았다. 아직 수양이 부족한 탓이리라 생각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잠잠해지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스스로 위안했다. 실제도 그랬다. 혼돈의 시간은 지나갔다. 지금은 바람결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건이 됐다. 내가 살아 있음을 인식하고, 지나온 삶과 지나가야 할 삶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잦아졌다.

퇴직 이후에는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때로는 평온함에 행복감을 즐길 수도 있지만 가끔씩 외로움과 불안감이 밀려올 때도 있다.


더위가 한풀 꺾였다.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저녁이 다가올 무렵은 아름다운 시간대다. 붉은빛이 구름에 젖어들기도 한다. 고즈넉한 대기의 기운이 방으로 스며든다. 이 시간에 글을 끄적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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