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가?" 이 해묵은 논쟁은 지난해 드리스 판아흐트 네덜란드 전 총리 부부의 안락사로 인해 다시 불붙었다. 93살인 판아흐트 전 총리는 자신의 집에서 의사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동갑내기 아내의 손을 잡고 안락사했다. 이들 부부는 자살을 금지하는 가톨릭 신자였지만 스스로의 뜻에 따라 죽음을 선택했다. 판아흐트 전 총리가 생전에 설립한 한 시민단체는 가족을 대신해 "두 사람 모두 건강 악화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배우자를 남겨두고 먼저 떠날 수 없어 이런 결정을 내렸다"라고 밝혔다.
모든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한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생명을 지켜내려 안간힘을 쓴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다. 오로지 인간만이 이런 순리에 저항할 때가 있다. 세계적인 작가 프리모 레비는 나치 치하에서 저항운동을 하다 체포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감금된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수용소의 극한적 상황을 견뎌내며 목숨을 지켜낸다. 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이때의 경험을 책으로 세상에 알려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1987년 우울증으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시시각각 죽음이 오가는 상황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가 이런 역설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삶은 끝까지 지켜야 할 대상이라고 한다. 역시 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자신의 삶은 자신이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내가 내 삶을 지켜내지 않으면 누가 지킬 것인가?' 나는 나의 삶의 마지막 보루인 것이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죽음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누구나 행복한 죽음을 꿈꾼다. 건강한 노년을 보내다 짧은 병고를 치를 뒤 세상을 떠나고 싶어 한다. 이런 행운이 많은 사람에게 주어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오랜 기간 고통이 극심한 불치의 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난다. 그것은 본인뿐만 아니라 남은 가족들에게 많은 부담과 상처를 안긴다. 그래서 아직 일부이기는 하지만 해외로 안락사 원정을 떠나는 경우도 있다.
안락사는 기본적으로 생명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어떻게 보느냐는 철학적 문제와 연결돼 있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간은 태어날 때 선택의 여지가 없었듯이 죽음도 임의로 선택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종교계에서는 이런 입장이 많다. 반면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기 몸에 대한 자기 통제권을 얘기한다.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판단한다.
우리나라는 2018년 연명 의료중단을 합법화했지만, 의사 조력을 통한 안락사는 불법이다. 때문에 판아흐트 전 총리처럼 국내에서 안락사를 할 방법이 없다. 안락사를 하려면 그것이 허용된 나라로 본인이 직접 가야 한다. 안락사를 허용한 나라는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등 소수에 불과하다. 그 숫자는 조금씩 늘고 있다.
노인 인구가 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불 지펴질 가능성이 있다. 지금은 스위스 등으로 원정을 가 안락사를 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는 주장도 적잖기 때문이다. 결론이 도출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간의 삶은 죽음으로써 완성된다'는 말에 동의한다. 삶의 주체는 나라는 자연인이다. 안락사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갖되 그것이 허용돼 인간이 스스로 선택할 기반을 마련하는 게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