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과 진리

by 풍뎅이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의 교훈은 다음과 같다. "희망은 크게, 신념은 굳게, 아량은 넓게"...미래를 꿈꾸며 웅지를 키워갈 10대에게 잘 어울리는 멋진 교훈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신념'에 대해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내 모교도 그런 맥락에서 교훈에 신념이라는 단어를 넣었을 것이다. 신념의 사전적 의미는 '굳게 믿는 마음'이다. 뭔가를 굳게 믿고 흔들리지 않는 것, 대쪽 같은 선비의 이미지도 있고, 올곧은 삶을 사는 정의로운 투사의 느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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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나름의 신념을 갖고 살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종교적 신념 등등.. 그런데 나는 나이가 들면서 인생을 사는데 '신념'을 굳게 가져가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굳은 신념'은 이미 언어에서 함축하듯이 비타협적이며 경직적이며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신념을 가지려면 어떤 대상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옳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독선적 요소가 내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올바른 신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도 그것이 정말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는 되돌아봐야 한다. 결과적으로 올바른 신념을 갖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릇된 신념은 사회와 타인에게 큰 해악을 끼치게 된다. 니체는 '신념은 거짓말보다 훨씬 위험한 진리의 적이다'라며 신념에 대해 신랄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어령 선생도 신념을 가진 사람을 가장 경계하라고 말씀하셨다. 신념의 가장 극단적 체계가 종교다.


인류사에 큰 해악은 대부분 신념에서 비롯됐다. 십자군 전쟁과 나치의 유대인 말살, 킬링필드 등도 모두 그릇된 신념에서 시작됐다. 그릇된 신념의 표면적 특징은 대단히 폭력적이다. 신념에 반하는 어떤 주장에 대해 설득보다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대한다. 단순히 언어적 폭력을 뛰어넘어 상황에 따라 물리적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상대는 적이고 이 사회에 암적인 존재이므로 말살해야 할 대상이 된다. 문제는 이런 신념의 당사자는 스스로가 옳은 일을 한다는 굳은 신념을 갖고 있다는데 있다.


나는 개개인의 신념이 가져오는 이익보다는 그 폐해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인류가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키면서 일궈낸 보편적 상식과 통념이 지배적인 사회가 돼야 한다. 타인의 생각을 나의 생각처럼 존중해주고, 그것이 설령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점을 만들내야 한다. 그리고 설령 어떤 신념을 갖고 있더라도 그 신념이 정말 불변하는 만고의 진리인지 되짚어보고, 상황에 따라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질 필요가 있다. 사다리에 오르려면 지금 딛고 있는 난간은 과감히 버려야 하는 것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 하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야 한다. 그것이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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