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도 기억나는 글이 있다. 나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학창 시절 교과서에 나왔던 글들이 심중에 깊게 남아 있다. 입시라는 관문을 향해 치닫던 고교시절, 삭막할 것 같은 국정 국어 교과서에도 사춘기 감성을 건드린 아름다운 글들이 실려 있었다. 40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조각조각 글귀가 기억에 남는다.
이제 그 교과서는 온데간데없지만 그 글은 인터넷에서 만날 수 있다. 독일 작가 안톤 슈낙이 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다. 독문학자인 김진섭 선생이 번역했다.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사체 위에 초추의 양광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가을날 비는 처량히 내리고, 그리운 이의 인적은 끊어져 거의 일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옛 궁성, 그래서, 벽은 헐어서 흙이 떨어지고, 어느 문설주의 삭은 나무 위에 거의 판독하기 어려운 문자를 볼 때, 몇 해고 몇 해고 지난 후에,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가 발견될 때. 그곳에 씌었으되,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여, 너의 소행이 내게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가져오게 했는가....."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혹은 하나의 허언, 혹은 하나의 치희, 이제는 벌써 그 많은 죄상을 기억 속에 찾을 수가 없다."
아름다운 글이다. 번역이 좋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운율도 살아 숨 쉰다. 마치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면을 보듯 회화적이다. 문장 하나 하나가 슬픔을 잘 묘사했다. 그 슬픔은 때로는 깊게 때로는 얇게 비쳐진다.
금강산 여행기인 정비석 선생의 <산정무한>도 좋았다. 그중에서도 이 단락의 문장이 가장 빼어났다. 지금도 군데군데 기억나는 구절이 있다.
태자의 몸으로 마의를 걸치고 스스로 험산에 들어온 것은, 천 년 사직을 망쳐버린 비통을 한 몸에 짊어지려는 고행이었으리라. 울며 소맷귀 보여 잡는 낙랑공주의 섬섬옥수를 뿌리치고 돌아서 입산할 때에, 대장부의 흉리가 어떠했을까? 흥망이 재천이라. 천운을 슬퍼한 들 무엇하랴만, 사람에게는 스스로 신의가 있으니, 태자가 고행으로 창맹에게 베푸신 도타운 지혜가 천 년 후에 따습다.
천년 사직이 남가일몽이었고, 태자 가신 지 또다시 천 년이 지났으니,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천년도 유수던가!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웅큼 부토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롭다.
낙랑공주의 섬섬옥수, 대장부 흉리, 남가일몽, 한 웅큼 부토...
개별적인 삶은 고달플 수 있지만 거기에서 인간의 보편성을 찾아낸다. 삶에 대한 경험이 미흡했던 10대의 나에게도 마의태자의 인생이 애처로워 보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를 글로 승화시킨 정비석 선생에 대한 경탄도 더해졌을 것이다.
피천득 선생의 <인연>도 기억나는 수필이다. 수채화 같은 글이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었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문체가 간결하고도 아름답다. 피천득의 인연은 이 단 한 줄에 모든 것이 함축돼 있다. 삶이라는 게 지나고 보면 회한이 들기도 하고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게 인생이지 않은가?
주입식 교육이 주였던 나의 학창시절에도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흥얼흥얼 외웠던 글들이다. 세월은 흘러 나를 이순의 언저리에 내려 놓았다. 10대에 읽었던 그 글과 나이가 든 지금에 느끼는 글맛은 삶의 세월만큼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 깊은 곳에 번져갔던 그 느낌과 감정은 아마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