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와 표현의 자유

by 풍뎅이

래리 플린트라는 인물은 넷플릭스 영화를 통해 처음 접했다. 그가 미국 성인잡지 '허슬러'의 창간 인물임도 그때 알았다. 그런데 래리 플린트는 단순히 성인잡지 창간자로만 유명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미국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인물이었다.


영화는 래리 플린트의 어린 시절을 비춰준다. 캔터키주의 한 산골 마을. 어린 래리는 동생 지미와 밀주가 담긴 수레를 끌고 힘겹게 산비탈에 오른다. 산중턱에는 주정뱅이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래리의 단골 고객이다. 래리는 노인에게 술을 팔고 몇 달러를 손에 쥐며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다짐을 한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래리는 스트립 바를 차렸는데 고객 홍보용으로 댄서들의 누드 사진을 실은 '허슬러 레터'를 제작, 배포해 큰 호응을 얻는다. '허슬러 레터'는 월간지 '허슬러'로 재탄생해 200만 부가 넘는 판매를 기록하며 이른바 대박을 터트린다. 이후 래리는 줄곧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허슬러'는 성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명 인물들을 성적으로 풍자하고 비꼬았다. 허슬러 판매부수가 늘수록 법적 다툼도 잦아졌다. 이때 래리는 신출내기 변호사 앨런 아이삭맨을 만난다. 앨런은 '허슬러를 좋아하진 않지만,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며 래리의 편에 서서 그를 적극 변호한다. 그런 와중에 기념비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허슬러는 유명한 복음전도사이지 기독교 근본주의자였던 제리 팔웰 목사가 어머니와 근친상간을 했다는 내용의 패러디 광고를 실었다. 팔웰 목사는 명예훼손 혐의로 래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래리 역시 자신의 광고 사진을 무단으로 인용했다며 법적으로 맞섰다.


이 재판에서 래리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 인 '표현의 자유'를 기치로 내세웠다. 연방 대법원까지 이어지는 지루한 법정공방 끝에 마침내 래리는 승소한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미국 시민은 공인이나 정책을 비판할 권리가 있으며, 비판은 그 대상에 대한 증오나 악의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허용돼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는 공인이 입는 정신적 피해보다 표현의 자유가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국가에서 핵심 가치로 꼽힌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어떤 경우에도 보장돼야 할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표현의 자유는 그것이 표방하는 관용성만큼 간단히 결론내기가 쉽지 않다. 미국이 표현의 자유를 헌법에 못 박은 뒤에도 시대와 처한 상황에 따라 숱한 도전을 받아 왔다. 그 도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적 발언,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언사도 표현의 자유라는 범주 속에 용인할 수 있을 것인지, 또 허위정보나 가짜뉴스의 범람을 막기 위해 정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도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나는 표현의 자유는 인간 개개인이 가진 고유한 가치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능한 폭넓게 인정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아래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리가 표현의 자유를 어느 수준까지 허용하고 제한해야 할지는 우리 스스로가 슬기롭게 결정해야 할 과제다. 어렵지만 인권과 역사의 진보라는 길 위에서 우리가 지혜를 모아 한 발짝 한 발짝씩 나아가야 할 영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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