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한다는 것

by 풍뎅이

여행을 다녀온 지 1년이 넘어섰다. 올해는 마음의 여유가 적었다. 이런저런 것 다 따지면 여행하기 어려운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아쉬운 일이다. 새해로 넘기는 과제가 됐다.


가족이 마지막으로 함께 한 여행은 일본 오키나와였다. 2023년 1월이었으니 벌써 3년 전이다. 아이들은 16년 전 미국 엘로우스톤을 둘러본 기억을 지금도 생생히 떠올린다. 광활한 대지와 야생동물, 밤하늘의 별...여행은 그 공간을 공유했던 사람들에게 그 기억도 함께 떼어준다. 공통의 얘깃거리가 된다. 여행이 가지는 힘이다.


여행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여행은 시작 전에 이미 시작된다. 여행 후에도 새겨진 기억을 언제든지 끄집어내어 되새김질할 수 있다.


인간은 원래 떠돌이(nomad)다. 먹을 곳을 찾아 여기저기 옮겨 다녔다. 수백만 년을 그렇게 살았다. 정주한 삶을 선택한 것은 만 년이 조금 넘는다. 우리 선조는 아득히 먼 옛날 아프리카를 떠나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며 유럽으로, 아시아로 흩어졌다. 우리의 DNA에는 이런 방랑벽이 각인돼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어디론가 떠나는 꿈을 꾸고 여행을 통해 실현한다.


인생을 긴 여정에 비유하기도 한다. 대학시절에 본 한 잡지 광고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여행이다(Life is not a race but a journey)." 간결한 메시지가 뇌리에 그대로 꽂혔다. 그런데 실제 삶에서는 레이스를 하는 경우가 많다. 짧게 보면 레이스고, 길게 보면 여행이다.


존재적으로 보면 지금의 나는 138억 년이라는 긴 세월을 거쳐 형성됐다. 인간으로서의 삶도 60년 동안의 긴 여정을 지나며 지금에 이르렀다. 때로는 한 곳에 오래 머물기도 하고, 아쉬움에 뒤를 되돌아보기도 했다. 앞으로의 여행도 어디로 갈지 딱히 이정표가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그 종점은 알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은 유한하니까...


12월 들어 계절의 존재감이 드러난다. 오늘 아침은 기온이 영하 8도까지 떨어졌다. 집안에 틀어박혀 있으면 기온의 변화를 읽기 쉽지 않다. 베란다에서 보이는 아담한 나무는 잎새를 다 떨구고 벌거벗었다. 다시 새싹이 돋고 잎새를 달고 낙엽이 지고...이 순환이 인간에게는 단 한 번에 그치지만 나무는 반복된다. 종말이 있는 반복이다. 글을 끄적이고 있는데 작은 애가 커피를 한잔 내려 갖다주고 간다. 커피 향기에 꽃내음이 짙다. 지금도 삶의 여정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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