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접하고 만나면서 살아간다.사람은 하나의 우주인 동시에똑같은 형질은 단 하나도 없다. 개개인은 저마다 취향도, 성격도, 입맛도, 개성도 전부 다다르다. 그런 다채로운 우주들과 만남으로서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어떤 특색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된다. 혼자서 고민하고 생각한들 스스로는 도무지 알기 어려운 면들도 있는 것이다.
겉모습을 관찰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들도 가끔 있다. 무엇을 입었는지,어떤 말투와 목소리로 말하는지, 카페에서 주로 무엇을 먹는지 따위의 요소들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도 변할 수 있고, 그것만으로 사람을 전부 다 알 수는 없다. 다시말해 사람마다 주어진 삶의 형태가 다르다는 것이다. 인생은 자신의 의지와 신의 통제가 뒤섞여 변주되는 악보와 같다. 선택만으로 향방이 결정되지도 않고, 같은 결정을 하더라도 저마다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기 일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있어서 다수가 택하고 걸어가는 큰 틀이나 방향성이 있다. 그리고 대개는 그 길을 따라간다. 그 길이야말로 시간이 증명해주고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이 검증해준 방법이기 때문이다.인생 루트를 정형화하는 데에서 오는 안정감이 있고, 한국에서는 그러한 제련(?)을 꽤나 강하게 추구하는 것 같다. 아마도 척박한 환경과 외부로부터의 수탈 및 대내외적인 전쟁이 잦았던 탓이 아닐까. 생존에 대한 열망은 삶에 대한 집착과 욕심을 낳고, 지나친 욕심은 나 자신의 파괴를 유도하게 된다.
시대와 상황은 늘 변하고 있다. 그리고 시대를 달리해도 변하지 않는 영속적 가치도 엄연히 존재한다. 삶은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절대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결승선이 어디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을 뿐더러, 가는 길목에는 소소한 함정들이 놓여 있고 무작위적인 장애물이 등장한다. 그것은 개인마다 무수히 다른 형질로 드러나며 자신의 의지만으로 그것을 전부 다스릴 수도, 변수를 통제할 수도 없다. 존재가 완벽하지 않기에 완벽하게 견고하고 아름답게 빈틈없이 마무리되는 그림 역시 존재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착한 사람에게는언제나 좋은 일이 생기고 행복이 가득할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상처받기 쉽고, 변질되고 물들고 파괴되기 쉬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유리한 생존을 위해 이익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며, 나쁜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러니 착하고 나쁘고를 따지기보다는 자기만의 기준과 중심을 가지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타인의 삶을 함부로 옳다 그르다 단정짓고 판단하기는 위험하다. 우리는 단지 그 다름을 관찰하고 비교하면서 자기만의 입장과 생각을 정리해나갈 수 있을 뿐이다.
비교는 종종 열등감을 낳는다. 그로 인해 발생한 시기심, 질투,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들도 뭉치면 힘이 세진다. 스스로 바로잡고 다스리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면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판단을 흐린다. 결국 자기만이 지니고 있던 빛과 색마저 잃고 마는 것이다. 타인과의 비교는 자신을 알게 하고 발전시키는 연료가 되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자아를 꼼꼼히 그리고 샅샅이 탐구해야한다. 그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기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따위를 보면 된다. 다양한 경험과 시도와 만남이 그것을 가능케하고, 그 과정에서 다시금 내가 새로워지는 일들도 있다. 예컨대 나는 사람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만남을 두려워하는데,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삶의 기준과 잣대가 약하고 나 자신의 중심이 다소 헐겁다는 것을 의미한다.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 자존감이 부족하면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하고 외부에 시선을 돌리면서 의존할 대상을 찾게 된다.
스스로의 자질이 너무나 볼품없고 보잘 것 없어 어디에 내놓기도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극히 평범하고 미약한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러한 독선과 아집은 사람들에게 내보이면 해결되리라 생각했고, 외부의 손길을 빌려스스로를 채찍질하기에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우습게도 모든 속살과 흉터를 온전히 다 드러내보이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괜찮다는 말을 지속적으로 스스로에게 주입하면서 순간 순간을 모면했지만 구멍은 절대 메워지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많은 것을 내 손으로 놓쳤고 흘려보냈고 잃었음을 깨달았다. 사실 그때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잃기도 한 것이었다.
초연해져야 한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을 얻고 잃든 간에 요동치지 않는 마음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지금 여기에 감사할 줄 모르면 인생은 가시밭길이 된다. 그리고, 여전히 주머니에 뭔가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설령 가진 게 없더라도,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선택과 결과와 보상에 대한 자유와 책임은 아직 남아있다는 뜻이다. 일단 실컷 X팔려하고, 남몰래 흘린 눈물을 닦은 다음 다시 공부를 시작해도 괜찮지 않을까. 누군가 인생은 원래 좀 흠도 탈도 많다고 어깨를 토닥이고 고개를 끄덕여주었으면 좋겠다. 일단 밥부터 든든히 챙겨먹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