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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 Mar 05. 2024

불안과 우울

무의식에 드리워진 어둠과 그림자


불안과 우울 습관다. 그 감정은 무겁고 축축하며 끈덕진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오래 느끼고 지니고 있을수록 뇌에 그 감각이 각인되며 몸이 기억하게 된다. 나는 언젠가부터 위축되고 주눅들어 지내며 알게 모르게 어떤 눈치 보는 인생을 살았다. 마도 구와 있었던 작은 마찰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그것은 감정의 어긋남에 까웠기에  아마 친구에게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적 변덕에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상처 아닌 상처를 스스로 충격과 상처로 받아들이면서 정체성과 인생을 크게 흔들. 오랜 시간이 지나 그런 반동이 진정한 나를 찾도록 이끌기도 했음 어렴풋이 깨달았다. 독과 약이 한 끗 차이로 달라지듯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존재하기에, 고통 속에는 늘 어떤 메시지가 들어있다는 것을 경험의 축적과 시간의 중첩을 통해서 알게되는 것 같다. 그것을 발견하고 해석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자신이 이전과는 다른 시야각을 갖추게 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고통은 갖가지 생각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리고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고통을 재생산하는 보이지 않는 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다. 생각이 많아지 일상도 달라진다. 나의 경우는 가족을 중심으로 삶이 재편되었다. 전보다 혼자 그리고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러나 가족 결코 온전한 만족감을 주지는 못했다. 모든 인간관계 적절한 거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친밀감의 탑을 높이 쌓아올린 후 그것이 흔들릴 즈음에야 뒤늦게 알았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는 점과 좋고 나쁜 상황은 늘 뒤집히기를 반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일로 종교 깊이 의지하게 고, 는 다시금 평안함과 정신적인 안정되찾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종교로 인해 더 지독하게 혼자가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스스로에 대한 정신적 학대로 느껴질 정도로 지독하게 외로웠고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임을 통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이라곤 그것이 전부였다. 나의 세계는 사실 언제나 턱없이 비좁았던 것이다. 그것이 스스로를 서히 무너뜨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안온한 울타리라 믿었다. 어떻게든 견디고 버티다보면 언젠가는 꼭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면서.


그런 이 믿음이란 것은 사실 생각보다 그리 견고하지 못하고 껍데기가 얄팍하여 흔들깨지기도 쉬운 녀석이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굳게 먹고 의지를 다지며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돌파라는 행위는 상당한 용기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인간은 대개 익숙한 것을 선호하도록 설계되어 나이가 들수록 새롭고 과감한 도전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살아오면서 형성된 습관이 현재에 안주하도록 뚝을 만든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언제나 작은 진리가 숨어있다. 고난처럼 보이는 것들도 각도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홀로그램처럼 귀중한 가르침과 빛이 있고, 아주 화려하고 멋지게 보이는 영화에도 어둠과 그림자가 깃들어있다. 요컨대 세상은 접시 하나에 짬뽕과 짜장면을 반씩 내어주고 어떤 것이 더 당신의 입맛에 맞느냐며 확인하고 시험하는 곳 같다. 상반되는 에너지들 립과 순환 상충 재를 반복하면서 아주 미묘한 균형을 유지한다. 그동안 나의 에너지는 어둠에 더 가까웠다. 말수가 줄고 잘 웃지 않게 되면서 밝고 명랑한 사람들을 꺼리 사회적 활동이라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그것은 경직된 이분법적 사고에 기인한 판단착오였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도 얼마든지 밝고 긍정적인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트라우마가 그것을 억압했고, 타자가 지닌 강한 빛 나의 어둠을 이해하지 못하여 다시금 서로를 괴롭히고 유리시킬 것이라고 지레 먼저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결국 모든 억압과 고통 나의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생각이 많은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좋은 생각보다는 사실적이라 따가운 생각에 더 잘 얽매다. 눈에 보이지도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는 안개같은 녀석이 실제 삶을 뒤흔들고 좌우한다니. 그래서 밝고 긍정적인 태도힘든 도 잘 되게 도와주고 복을 가져다주나보다. 여전히 그림자가 나의 등에 업 있다. 무겁나를 붙들고 아프게도 하지만, 그림자가 있음으로 인해 빛아름답고 따스한 얼굴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된다. 그래서 그림자는 성숙을 그려내는 목탄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저 밝고 가벼운 것보다는, 진중하되 무겁지 않은 태도가 어른의 색채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세상의 복합적 구조와 원리에 대한 깊고 정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 때문이다. 나이를 제대로, 잘 먹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구나 싶다. 하루하루 늙기보다 잘 나이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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