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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 Dec 08. 2024

시절인연

@Bianca Gasparoto by pexels


나는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줄곧 인연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곤 한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설렘과 기쁨을 가져다는 일이었지만 동시에 극심한 고통과 스트레스를 줄 때도 있었다. 단지 내가 너무 예민하고 민감 반응을 보였던 것은 아닌가하고 스스로를 돌아보았지만, 그와 별개로 그다지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부류도 분명 니 예민함은 축복이자 저주가 분명하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고, 그에 따라 내가 변화되기도 하기 때문에 만남의 형태는 아주 다양하다. 잠깐 만났지만 길고 따스한 그리움의 궤적이 남는 인연이 있고, 오랜 시간을 만나왔지만 서서히 거리를 벌렸으면 싶은 사람들도 있다. 대개 세월이 흐르면서 상대방의 면면을 좀더 상세히 알게되 마음의 온도가 떨어는 경우가 빈번했고, 스로 마음의 여력이 없을 때에는 별다른  없이 조용히 관계를 잘라내기도 했다. 어쨌든, 대부분의 인연은 함께 했던 시간의 길이와 크기만큼 쉬움 오래 기는 것 같다. 그때는 어렸고, 서툴렀고, 감정을 다루는 것에 미숙했기에 좀더 성숙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은 관계도 있다. 물론, 그런 일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이런 생각들이 있는 것이겠지만. 이가 들면서 관계 맺고 끊는 방식에 따라 나에게 피와 살이 되는 에너지의 원천이라는 생각을 한다. 좀더 부드러운 방식으로 천히 가까워지고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방법 익힐 때 비로소 어른이 되는 거라고 믿으며.



시절인연이라는 말처럼 인간관계를 명확히 일컫는 어휘도 없을 것이다. 흔히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주 사소한 계기로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조금씩,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번개를 맞듯 달라지기도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제와는 다른 모습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동일하게 지속되는 관계는 없다. 그럼에도 과거의 내가 있었기에 과거의 사람들도 있었고, 그 사람들이 지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엄연히 내 인생의 어느 시점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무가 푸른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 낙엽을 떨구며 죽어가듯 사람의 일생 계절을 겪으며 끝없이 순환한다. 그것 흥망성쇠라고 불리기 하고, 자의 생장과 쇠락은 교차되고 엇갈린다. 다만, 우리가 크고 오래된 나무가 될수록 자신에게 찾아드는 나비와 새는 더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구태여 모두가 나무가 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눈과 귀와 움직임으로 나에게 맞는 파동을 찾아가면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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