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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Mar 28. 2017

삶염

2017년 3월 28일, 예순아홉 번째

입병이 났다. 어디서 상처를 입었는지, 짭짤한 맛이 나면서 벌어진 살껍질이 느껴지다가, 급기야는 하얗게 부풀어올랐다. 운석이 달에 부딪힌 듯이 중심은 움푹 파였다. 환부 주위에는 노란 빛도 돈다. 붉은 점막과 하얀 염증이 꽤나 조화를 이룬다.

구내염. 입 안에 염증이 났다는 뜻이다. 염증은 아프다. 오른쪽 사랑니 부근 혀 밑에 하나, 왼쪽 아래 대문니에 맞닿은 입술에 하나, 이렇게 두 개가 났다. 혀가 아파 말할 때 발음이 안 된다. 김치를 먹으면 사포를 입 안에 문대는 느낌이 난다.

아픈 이유는 단 하나, 낫느라 그런 것이다. 몸 안에 염증인자가 들어오면 혈액이 몰리고 백혈구가 몰린다. 염증반응이다. 몸은 스스로 스스로를 지킨다. 물로 씻어내듯이 나쁜 것을 피에 태워 보낸다. 백혈구는 그것들을 잡아먹는다. 그 와중에 주위 신경이 눌린다. 통증은 이때 발생한다. 신경은 내 속도 모르고 자꾸만 위험하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급한 불은 먼저 꺼야 한다. 급하다는 생각이 들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뛰어들어야 한다.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일이 이내 몸의 목적이지만, 몸은 위험에 빠지면 고통도 마다하지 않으며 위험을 몰아낸다. 흔히들 입에 올리는 '노오력'과 다르다. 자아를 잃을 위기라면 삶이 위태로워질 때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그러다 죽는 경우도 있다. 폐렴, 한센병, 류마티스 관절염 등은 생명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염증반응이다. 이런 경우는 둘 중 하나다. 어차피 못 이길 나쁜 것이 몸에 들어왔거나, 나쁜 것이 아닌데 잘못 알고 계속 염증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주로, 전자는 급성염증라 하고, 후자는 만성염증이라 한다. 그러나 급성염증이든 만성염증이든 가치는 달라지지 않는다. 모두 자아를 지키려는 노력이다.

못 이길 싸움은 끝내고 나서야 알 수 있다.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일단 뛰어들고 보자. 다만, 삶을 걸어야 하는 일인지는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잘못하면 제 풀에 지쳐 포기하게 될 테니까. 내 노력이 나를 망칠 수도 있다.

삶은 죽음에 대한 염증반응이었다. 폐에 나면 폐렴, 피부에 나면 피부염이다. 우리 삶이 곧 염증이므로 우리는 모두 삶염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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