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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Mar 29. 2017

억울한 까치 구하기

2017년 3월 29일, 일흔 번째

까치 한 마리가 축구골대 그물에 걸려있었다. 그물이 날개에 얽혀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였다. 나와 친구들이 다가가자 까치는 놀라서 푸드덕거렸다. 그런데 꽤나 아팠는지 이내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가만히 우리 손을 받아들였다.

친구가 몸통을 잡고 날개를 살펴보았다. 까치는 성한 두 발로 친구 손가락을 꼭 쥐고 있었다. 눈을 꼭 감고 입을 벌린다. 친구가 날개를 펼쳐 보자 부리로 친구 손을 쪼았다. 아프니까 건들지 말라는 건가. 나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조심히 눈을 가려주었다. 그러자 거칠던 숨이 부드러워지고 긴장해 굳어있던 몸이 풀렸다.

날개는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였다. 세네 겹으로 꼬인 그물이 날개를 옥죄고 있었고, 날개는 주리가 틀린 듯이 살이 으깨지기 직전이었다. 그물은 단단했다. 이리저리 뒤적이며 실마리를 찾기에는 날개 상태가 여의치 않았다.


아마 날다가 그물에 걸렸을 것이다. 알아채기도 전에 이미 날개는 그물에 엉켰을 거고, 우당탕탕 넘어진 후에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날개를 움직였을 텐데, 움직일수록 날개는 더 아파왔을 게다. 멍청이. 애초에 그물을 보지 못해서, 움직일수록 엉키는데도 몸부림쳐서, 까치에게 화가 났다.

그러게 진작 잘했어야지. '진작'이란 말은 잔인하다. '진작'은 언제나 일이 벌어진 후 해석할 때만 쓰는 단어다. '진작'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두고 당사자를 원망할 때에만 나타난다. 이런 태도는 개인 밖에서 발생한 문제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릴 때 주로 보인다. '진작'이라는 단어는, 시험 망친 수험생을, 해고 당한 근로자를, 죽음 앞둔 중환자를 정조준한다. '진작'은, 모든 책임을 당사자의 무지나 무감각에 돌림으로써 혹시라도 자신에게 튈 불똥을 방지하기 위해 쓰이는, 유용한 도구다.

'진작'에 찔리면 억울함이 흐른다. 말을 못해서 그렇지, 까치도 억울하다. 까치 입장에서는 자기 길에 사람이 장애물을 놓은 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물이 그렇게 생겨먹은 것도 잘못이다. 나뭇가지는 아무리 스쳐지나가도 까치를 옭아매지 않는다. 그러나 그물은 까치를 잡아 날개를 아주 못쓰게 만든다. 그렇게 위험한 물건이면 색이라도 눈에 띄게 두든지. 주변색에 싸여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피하라는 말인가. 억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진작 그물 좀 어떻게 하지!


결국 그물을 끊기로 했다. 다음부터는 틈 사이로 공이 빠져나가겠지만, 생명을 희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까치에 닿지 않으면서도 가장 짧게 그물을 자를 수 있는 위치를, 갖고 있던 라이터로 지졌다. 끊은 후에도 몇 번이고 엉킨 그물을 풀어야 했다. 그물을 풀고 나니 날개에 혈색이 돌고 상처에는 핏방울이 맺혔다. 상처는 깊었지만 날개를 잃을 정도까지는 아닌 듯했다.

옷으로 몸 전체를 감쌌다. 날개에 힘이 도는지 옷 안에서 꿈틀거린다. 머리부터 꺼내주었다. 어리둥절하는가 싶더니 발길질을 한다. 감싸고 있던 손을 풀었다. 발로 박차고 날개를 활짝 폈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구나. 찰나의 비행을 마치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벚꽃나무 위에 올라앉았다.

까치는 진작에 벚꽃나무 위로 가고 싶었을 것이다.  까치는 오랜 시간 동안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않고 다친 날개를 보살폈다. 까치에게 절실했던 건 원망이 아니라 구조였다. 진작 구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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