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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Mar 30. 2017

말더듬이: 생각의 병목현상

2017년 3월 30일, 일흔한 번째

언제부턴가 말을 더듬는다. 심하게는 아니지만 조금씩 느껴진다. 처음에는 한 음절 발음을 실수하는 정도였으나 요즘은 부쩍 한 단어를 통째로 틀리거나 나도 모르게 같은 음절을 반복한다. 머리로는 문장이 완성됐는데 혀가 안 따라주니 답답한 노릇이다.

어린이는 말을 더듬는 친구에게서 말더듬이를 배워올 수도 있단다. 그런데 나는 어린이가 아닐 뿐더러 내 주위에는 말더듬이를 옮길 사람도 없다. 이십대 중반에 말더듬이라니. 우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말더듬이는 더듬는 순간에 느껴지지 않는다. 내 말을 내가 듣고 이상한 낌새를 알아챌 때에야 느껴진다. 말을 더듬었을 때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병목현상이다. 말하려던 단어들이 쏟아지다가, 엉킨 것 같기 때문이다. 입이 좁다.

생각의 병목현상. 자세히 보면 말이 될 수 없는 말이다. 생각은 사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물은 연장을 갖는다. 공간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연장을 갖는 모든 존재는 서로 공간적으로 겹칠 수 없다. 양 손을 마주칠 때 서로 통과하지 않고 손뼉을 치게 되는 이유다. 그러나 생각은 연장을 갖지 않는다. 애초에 공간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병목현상은 연장을 갖는 존재에만 어울리는 말이다.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은 단어는 생각이다. 따라서 생각은 공간적으로 겹칠 수 있고, 병목현상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말을 더듬을 때에는 병목현상이 일어나 생각이 엉켰다는 느낌을 받는다. 모순적인 일이다.

유물론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생각의 병목현상은 가능할 수도 있다. 만물이 오직(유) 사물(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담론이기 때문이다. 유물론자는 생각도 신경계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화학적 상호작용이라 믿는다. 따라서 생각도 예외 없이 연장을 갖는다. 광자나 전자같은 입자들이 연장을 갖기 때문이다.

유물론에 반대되는 생각이 심신이원론이다. 심신이원론은 마음과 몸이 각각 다른 존재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익숙한,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되었다는 논리다. 사실 이 생각은 <파이돈>이라는 책에서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먼저 말했다. 책에서 소크라테스는 조물주가 사람을 창조할 때 육체에 영혼을 넣었다고 주장한다. 영혼이 연장을 갖지 않는다는 생각도 이 이론에 기초한다.

생각이 연장을 갖든 갖지 않든 말더듬이는 심각한 문제다. 첫째는 내가 답답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다른 이가 알아듣기 힘들까봐 마음이 쓰이기 때문이며, 셋째로는 이대로 가다가 영영 못 고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생각을 좀 줄이고 입을 더 빨리 놀려야겠다. 볼펜이라도 물고 연습해야 하나. 말할 때 내 머릿속에서 단어들이 우당탕탕 엉키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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