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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Apr 03. 2017

La La Land: 재즈, 눈물나게 아름다운

2017년 4월 3일, 일흔두 번째

재즈를 좋아한다. 묘해서 좋다. 빠른 리듬으로 살살 굴리면서 관악기나 피아노로 경쾌하게 풀어나가는 느낌도 좋지만, 박자를 밀고 당기면서 나타나는 긴장에서 빛이 난다. 일부러 익숙하지 않은 음을 눌러 고막을 때리는 느낌도 아릿하다. 슬픔을 간직한 기쁨. 재즈는 그 자체로 모순이다.

라라랜드. 재즈가 나오는 영화라고 해서 마음이 부풀었다. 개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매했다. 표는 두 장. 여자친구와 같이 갔다. 추운 겨울이었다. 늦은 밤 라라랜드 OST를 듣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쓴다.


경제관념 없는 순혈주의 재즈 피아니스트와 오디션 낙방을 거듭하는 무명 배우의 사랑 이야기. 피아니스트는 정통 재즈를 사랑하고 퓨전 재즈를 경멸한다. 그런데 정통 재즈보다 그녀를 더 사랑하게 된다. 그녀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퓨전 재즈에 눈을 돌린다. 유명 가수와 전국 순회공연을 다닌다. 억지스러운 신디사이저를 누르면서. 돈은 모이는데 사랑할 시간은 줄어간다. 다툼의 연속. 우여곡절 끝에 피아니스트의 도움으로 여자친구는 오디션에 합격한다. 그러나 둘은 헤어진다.

뻔한 소재에 뻔한 전개였다. 그런데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다. 영화는 그 자체로 정통 재즈였다. Dm 코드로 시작하는 II-V-I 진행은 영화 내내 계속됐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이야기도 그 진행을 따랐다.

II-V-I 진행은 대표적인 재즈 진행이다. 직접 쳐서 들어보면 느낌이 온다. Dm7-G7-CM7. 무언가 부족한 듯 시작하다가 머릿속이 복잡해지더니 가슴 한 켠이 찜찜하게 끝난다. 그러나 여전히 모든 화음이 아름답다. 감독은 이 진행을 눈여겨 본 것 같다.


둘이 만나(II)
서로를 둘러싼 것들로 고뇌하다(V)
결국엔 혼자가 된다(I).



마지막을 C코드로만 끝내면 깔끔하게 끝나는 느낌이 난다. 이렇게 딱 끝내는 진행을 해결이라 부른다. '기승전'으로 긴장을 이어가며 가슴속에 가득 쌓인 응어리를 C코드로 풀어준다. 도-미-솔-도. 낮은 도와 높은 도가 이루는 완전화음이 모든 긴장을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C로 끝내면 재즈가 아니다. 재즈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미-솔-시. 굳이 반음 낮춰 시를 꺼낸다. CM7(C Major 7th)이라 부르는 화음이다. 도와 시가 이루는 불협화음은 묘하다. 따뜻한 안개 속을 헤매는 느낌이다. 아름다운데 슬프다. 분명 끝이 났는데 가슴이 허전하다. '기승전결'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울컥인다.


무명 배우는 피아니스트의 도움으로 유명인이 된다. 좋은 차에 큰 집, 사랑스러운 아기까지 있다. 피아니스트는 혼자가 되었다. 언젠가 같이 운영하며 살자던 재즈 바를 홀로 열었다. 바의 이름은 "Chicken on a Stick." 그녀가 지어주었던, 재즈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아 싫다고 했던 이름이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우연히 그 바를 찾는다. 바에서는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연주 중에 눈을 마주친다. 만날 수 없는, 이제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이 서로를 바라본다. 해결해야 할 시간이다. 그러나 가슴 언저리에 남는 공허함. CM7.

피아니스트는 정통 재즈를 사랑했다. 재즈는 재즈다워야 한다고, 언제나 말했다. 그래서 그의 사랑은 재즈가 되었다. 눈물나게 아름다운, 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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