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재영 Apr 06. 2017

겸손은 힘들어

2017년 4월 6일, 일흔다섯 번째

수업을 듣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교재를 읽어도 눈만 글자 위를 헤맬 뿐, 독해할 수 없었다. 내가 멍청한 걸까? 문득, 선생의 능력이 모자라서, 아니면 교재를 쓴 사람조차 이해하지 못해서 나를 이해시키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나쁘면 겸손하기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곧 자괴감이 몰려왔다. 아, 나는 여기까지밖에 안 되는 사람이로구나.

겸손과 자괴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스스로를 낮게 평가한다는 점에서 둘은 같다. '네가 똑똑하지 못해서, 못 알아듣게 말했다'고 하는 건 거만이다. '내가 똑똑하지 못해서, 못 알아들었다'고 해야 겸손이나 자괴가 된다. 적어도 겉에서 보기에 겸손과 자괴는 닮은꼴이다.

두 태도는 속마음에서 차이점을 보이는 듯싶다. 겸손은 진심으로 스스로를 멍청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나는 똑똑하지만 굳이 네게 똑똑하다고 으스댈 필요는 없지, 라고 여기는 태도가 겸손이다. 어쩌면, 에이, 아니에요, 어찌 그런 말씀을, 등등의 반응이 주위에서 나타나기를 바랄 수도 있다.

반면, 자괴는 스스로를 정녕 멍청하다고 여기는 태도다. 나는 한없이 모자라고 부족한 존재여서 그 어느 곳에도 나서면 안 된다, 고 생각한다. 겸손한 사람은 속마음에서든 주위사람들로부터든 위안을 받는다. 그러나 자괴의 늪에 빠진 사람은 끝없이 자기반성을 이어간다. 때때로 자기혐오로까지 이어가면서. 자살은 파괴된 정신이 육체까지 제거하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겸손은 위선이나 자괴는 순수다.
그러므로 겸손이 미덕인 사회에서 자괴는 겸손보다 더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스스로를 낮추는 일이 진정한 미덕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스스로를 낮추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하거나 자아를 파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겸손을 권하는 사회는 거짓말이나 자살도 긍정적으로 여겨야 한다. 그런 사회는 신뢰가 없거나, 개성이 없거나, 둘 중 하나로 귀결된다.

특히 학문은 도전적이어야 한다. 겸손을 강조하는 선생은 결코 후학을 양성할 수 없다. 철학은 부친살해의 역사라고까지 말하지 않는가. 겸손한 학자는 이름을 남길 수 없는 법이다. 적당히 거만해지자.

매거진의 이전글 분리불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