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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Apr 07. 2017

목련처럼 아이를 사랑하라

2017년 4월 7일, 일흔여섯 번째

목련은 봄의 전령이다. 봄이 오기도 전에 꽃봉오리가 맺히고, 꽃잎이 벌어지면 그제서야 날이 따뜻해진다. 목련은 스스로의 시간을 살고, 사람은 목련을 보고 봄이 왔음을 깨닫는다.

지난 월요일만 해도 봄은 문지방에 서 있었다. 누군가 건물 벽 앞에 목련나무를 심어두었다. 흰 벽과 흰 목련의 조화가 더없이 순결해 보였다. 둥치가 웬만한 나뭇가지만 한 어린 나무였는데, 아마 첫 꽃잎을 피운 게 아닐까 싶었다. 순수, 순결 따위의 단어는 그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목련은 늦겨울 아쉬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그런데 참 기묘한 것이, 같은 나무 반대편 가지에서는 꽃봉오리들이 채 맺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벽에 가까운 쪽 가지는 이미 흐드러져 꽃비를 내리고 있었는데도.

같은 나무인데도 한 쪽은 꽃잎을 날리고, 다른 한 쪽은 꽃봉오리도 맺지 못했다. 나무는 빨리 핀 꽃을 고맙게 여겼을까?

글쎄, 꽃은 저마다 따르는 시간이 모두 다르다. 이성의 다른 이름은 경제성이라, 합리적인 '인간'에게 시간은 비용일 뿐이지만, 꽃은 그렇지 않다. 사람냄새가 인간적이지 않은 것처럼.

아마도 흰 벽이 더 많은 햇빛을 반사해 대류열을 많이 받아서 온도가 올라 벽에 가까운 쪽 가지가 더 빨리 꽃을 피웠으리라. 그러나 아무도 꽃봉오리에 머무른 가지를 나무라지 않는다. 더 빨리 핀 꽃잎을 부러워하지도 않았다. 어린 목련나무는 스스로 변화를 직감하고 꽃을 피웠을 뿐이다. 자기 시간에 따라, 그러나 세상에 맞게.


평생 주부로 사시던 어머니께서 최근 취업을 하셨다. 직함은 안전선생님. 영어유치원에 통학하는 아이들이 안전히 차에 타고 내릴 수 있게 도와주시는 일이란다. 아이처럼 기뻐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행복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 감출 수 없었다.

영어유치원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슴이 먹먹하다. 영어와 유치원. 어린 목련나무 앞에 거대한 전열기구를 두는 느낌이었다. 꽃과 사람은 저마다 다른 시간을 사는데, 인간은 굳이 효율을 따진다.


"언어공부는 일찍 시작할 수록 좋습니다."
"외국어는 유아기에 노출시켜야 낫습니다."
도대체 누구에게 좋고, 누구에게 낫다는 것일까. 다른 목련이 피기 전에 흐드러지는 것이 좋고 나은 것일까. 목련은 벚꽃과 개나리에 쫓겨 꽃을 피웠던 것인가. 어머니 일터가 궁금해 찾아본 영어유치원 광고 문구는 쓴 담배 맛 같았다.

나는 한동안 고민했으나 답을 찾지 못하고 이내 돌아섰다.

보도블록 위에는 떨어진 목련잎이 짓밟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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