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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Apr 10. 2017

단비같이 반가운 사람

2017년 4월 10일, 일흔일곱 번째

어린 시절, 지도 보는 일을 좋아했다. 이건 물, 이건 땅, 하면서 지도를 들여다 보았다. 땅 위에 파란 선은 강을 나타낸다고 배웠다. 그런데 강이 흐르는 방향은 내 생각과 달랐다. 어린 나는 강이 바다에서 땅 깊숙한 곳으로 흐른다고 생각했다.

물은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흘러야 한다. 그래야 강물이 마르지 않는다. 어린이가 당연하게 여겼던 세상의 이치다. 사탕을 많이 가졌다면 적게 가진 친구와 나누어야 한다. 모든 것은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보내야 한다.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강은 바다로 흐른다. 이 사실은 학교에 입학해 선생님께 배우고 나서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지도로는 높낮이를 알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모든 것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간다. 그로 인해 물은 바다로 흐르고, 땅은 바다에 물을 빼앗긴다. 세상은 생각보다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바다에 고인 물이 비가 된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지도에는 비가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로 인해 강은 마르지 않고, 바다는 넘치지 않는다. 더 빼앗지 못하게, 더는 빼앗기지 못하게 벽을 쌓으면 물에 병이 든다. 비는 흐름을 막지 않지만 강도 바다도 모두 지킨다.

사람은 비를 닮아야 한다. 세상의 흐름에 정면으로 맞서서는 안 되지만, 메마른 이들을 돌봐주어야 한다. 최소수혜자에게 최대이익을 보장하라는, 롤스의 말이 생각난다. 그런 사람이라면 가뭄에 단비같이 반갑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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