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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May 08. 2017

얕은 우정에 힘들어요

2017년 5월 7일, 여든네 번째

어느 날 신이 우리에게 나타나 "무엇이 가장 고민이냐"라고 하면, 우리는 무어라 말할까. 앞으로 며칠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고 싶다. 우리 마음에 묻은 위선일랑 지워버리고, 정녕 우리가 고민하는 게 무언지 생각해보자.

친구랑 깊은 사이인지 의문스러워요.
그냥 오래 만나서 계속 만나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어요.



친구란 어떤 존재인가? 우정은 묘한 감정이다. 아는 사이와 친한 사이를 가르는 희미한 경계가 있다. 모호하지만, 분명히 있다.

우정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 스스로를 나라고 부르는가. 그 조건을 '정체성'이라 한다. 어제의 나는 지금의 나와 같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의식을 잃는다는 점에서, 잠과 죽음은 같기 때문이다. 어제의 의식은 어젯밤의 잠으로 끝이다. 우리는 매일 다시 태어나는 셈이다.

내가 나를 나라고 부르는 일은, 오늘의 의식이 어제의 의식과 같은 의식이라고 주장하는 일이다. '기억'과 '가치관'은 정체성의 근거가 된다. 예컨대 술을 마셔서 필름이 끊기면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없다. 어제 일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어제의 행동이 오늘의 가치관과 같지 않았다면, 차마 나를 나라 부르지 못하고, 차라리 개라 부르고플 때가 많다. 요컨대, 어제의 사건을 기억하고 오늘의 가치관이 그 사건들과 다르지 않을 때 정체성이 유지되는 것이다.

우정도 그렇다. 얼굴만 안다고 친구는 아니다. 그 사람과 있었던 일을 기억할 때, 그 사람이 할 행동을 이미 알고 있을 때, 우정을 확인한다. 따라서 깊은 사이는, 숨김없이 내 기억을 꺼내고 가치관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기억이나 가치관이 서로 부딪치면 우정도 흔들린다. 자기도 모르게 상처 받은 기억이 있거나, 아무리 미묘하더라도 가치관이 서로 다를 때, 우리는 우정을 의심하게 된다.

가족은 피로 엮여 끊을 수 없다. 친구는 기억과 가치관이 엮였을 때 끊기 힘들다. 그래도 끊어야겠다면 끊는 게 몸과 마음에 편하다.


그러나 정말 끈끈한 친구는,
같다고 붙어있는 사람이 아니라
달라도 멀어지지 않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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