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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May 17. 2017

나만 뒤쳐지는 느낌이에요

2017년 5월 17일, 여든다섯 번째

다른 사람들,
특히 친구들은 다들 무언가 하고 있어요.
언제나 나아가고 있고, 발전하고 있어요.
그런데 나 혼자만 고여있네요.
어쩌면 물러서고 있을지도 몰라요.


열등감이다. 당장 듣기에는 거북할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이가 나보다 낫다는 느낌, 이 감정은 열등감이다.

흔히 열등감을 피해의식과 혼동한다. 피해의식은 열등감과 같은 뿌리에서 난다. 그러나 열등감은 누구에게도 잘못을 지우지 않는다. 반면 피해의식은 언제나 누군가를 가해자로 삼는다. 말하자면, 열등감은 '그저 그가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고, 피해의식은 '그의 무엇 때문에 그가 나를 앞선다'는 생각이다.

열등감은 때로 긍정적이다. 내게 고민을 털어놓은 친구는 열등감을 발판 삼아 발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언제나 자기보다 나은 사람과 가까워지기를 원한다. 더 나은 사람으로부터 배우려고 하며, 그의 장점을 흡수하려 든다.

자연히 그의 눈에는 자기만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들어오지 않을 게다. 그러니까 그가 보는 세상에는 그보다 나은 사람만 가득할 뿐이다. 우울할 수밖에 없다. 알랭 드 보통은 JTBC '비정상회담'에서 한국인 특유의 우울감(멜랑콜리)를 언급했다. 알랭 드 보통은 한국인을 보고, "스스로를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행복하지 않다고 여김으로써,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내 친구의 열등감도 한국적 우울감이었으리라.

모두의 마음 속에는 그릇이 있다. 그 그릇이 비었다고 여기는 사람은 다른 이의 그릇에서 물을 구하려고 할 것이요, 찼다고 여기는 사람은 물 구하기를 멈추거나 오히려 다른 이에게 물을 대려고 할 것이다. 물론 내 마음 속에도 그릇이 있다. 어릴 적부터 그릇은 차는 법이 없었다. 끊임없이 지식과 능력을 갈구해왔다.

그릇 채우기에 환멸을 느껴 깨버리고 싶은 때도 있었다. 그러나 밑 빠진 독은 아니었다. 열등감을 느끼는 모든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빈 그릇은 삶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우직하게 그릇을 채우자.
가끔 숨이 차면
내가 채운 그릇을 들여다 보자.
밑 빠진 독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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