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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Sep 15. 2017

담배를 태우며

2017년 9월 15일, 아흔두 번째

나는 담배를 비벼 끄지 않는다. 마지막 한 모금을 내쉬고나면 담배 끝자락에 힘겹게 달린 불씨를 관찰한다.

사람이 흙으로 돌아가듯이 담배는 연기로 흩어진다. 나풀나풀 피어나다 단말마의 비명으로 스러지는 불씨를 바라본다. 담배는 죽어가고 나는 담배에서 나의 죽음을 떠올린다. 담배가 가진 해악은 절대적이지 않다. 모든 사람은 죽음에 이르는 병에 신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배는 없던 죽음을 예정하지 못하고 다만 시간을 앞당길 뿐이다.

담배는 타들어 갈수록 연기를 달군다. 천수를 누리지 못하는 모든 사람이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담배의 길이가 줄어들수록 연기를 받아들이는 목구멍은 힘겹다. 따끔따끔한 혀 아래로 침이 고인다.

모두 타들어간 담배에는 빈자리만 남는다. 마침내 불씨가 떨어지면 담뱃잎이 우겨 들어찼던 자리는 비어버린다. 나는 담배를 피우며 나의 빈자리를 생각해본다. 비어 있음은 외로움을 낳는다. 내게 담배를 그만두라는 사람들은 사실 외로움이 두려운 것이다. 내 자리를 비우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를 꽉꽉 눌러 어딘가 들어차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그런 사람들의 빈자리가 두려워 담배를 태운다. 우스운 변명이다.

힘든 나날들이 줄을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제는 이러해서, 오늘은 이러해서 가슴이 짓눌린다. 담배처럼 나를 태우려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다. 내게서 가져갈 수 있는 모든 것들, 예를 들면 니코틴 같은 노동력이라든지, 타르 같은 끈기라든지, 비소 같은 정신을 빨아들이려 애를 쓴다. 실컷 빨고 나서는 가진 것이라곤 해악뿐인 쓸모 없는 것이라며 나를 비웃는다.

나는 타들어가는 내 자리를 힘겹게 붙잡고 있다. 힘겹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세상은 그런 법이거늘. 그런 세상은 수많은 담배 불씨들을 무너뜨린다. 아이러니한 것은 나를 태워 빨아대는 그들도 누군가의 허파를 드나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독한 굴레가 시작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나는 담배를 끊을 수 있을까.

비어 있음은 외로움을 낳는다. 우리는 모두 외롭다. 너의 빈자리에, 나의 빌 자리에 우리는 미리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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