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자고 하면 싸움도 정치가 된다. 너 죽고 나 살자고 하면 정치도 싸움밖에 안 된다. 선거는 본디 싸움이다. 선거가 끝난지 언젠데 피바람이 불 것만 같다. 같이 살자는 말이 안 나와서 그렇다. 패배자를 죽음으로 내몬 역사가 있어서 그렇다.
소위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사람들은 저쪽이 범죄를 저지를 것 같아서 이쪽에 표를 던진다. 범죄는 그야말로 ‘너 죽고 나 살자’는 행동이다. 범죄자가 활개치는 한 사람들은 더불어 살 수 없다. 정의가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 정의는 범죄를 처벌할 때 나타난다. 범죄자들이 처벌의 공포를 느낄 때에만, 함께 사는 사람들의 평등이나 차이가 의미를 얻는다. 물론 여기서 범죄는 법을 어기는 짓뿐만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짓들’도 모두 범죄로 보아야 한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법이 미처 다루지 못하는 범죄가 너무나 많다. 봐주기, 먼지털이, 과잉충성, 관행, 내로남불… 모두 다 함께 사는 삶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짓거리들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그런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처벌한다는 성격이 강했다. ‘힘을 줄 테니 정권을 잡아 저쪽을 몰아내라!’ 어느 편의 입에서 나오더라도 정치의 언어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오싹하다. 수많은 사람이 이렇게 외치지 않나?
선거는 처벌의 한 종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처벌은 복수처럼 집요하지 않고 용서처럼 너그럽지 않다. 정권교체에만 목멘다면 선거는 복수가 된다. 저쪽의 범죄를 눈감아준다면 선거는 용서가 된다. 그래선 안 된다. 자리를 탐내지 않으면서도 상대편의 범죄를 기억해야 한다. 그러면 선거는 정의로울 수 있다. 선거가 끝나도 같이 살자고 손 내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