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건축가 유현준을 좋아한다. 내가 건축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건축은 삶의 조건이다. 법이 정치의 조건인 것과 유사하다. 법학과 정치철학을 공부한 내게 건축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운 신대륙이다. 유현준은 쉽고 깔끔하고 멋졌다. 소크 연구소를 분석하는 이야기에서 건축학자의 섬세함이 보였다. 구조가 아니라 형태만 모방한 가우디의 건축이 과대평가 받았다는 비판에서는 통쾌하기도 했다. 광화문 광장을 비판하면서 건축과 정치의 관계를 논한 것도 듣기 좋았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유현준의 세계관에서 모든 것은 돈으로 귀결된다. 건축에 들이는 노동량과 비용의 양에 따라 정치적 권력과 권위를 측정할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예컨대 피라미드는 그만큼의 노동자와 자재를 댈 수 있었던 지도자의 권력을 뜻한다는 식이다. 혹은 만들기 힘든 디테일일수록 시간과 돈이 많이 들고 그래서 아름다워 보인다는 식이다. 인간의 인식은 시공간이라는 조건에 놓여있고, 삶 역시도 건축이라는 조건에 놓여 있으니 일견 타당하게 들린다.
문제는 유현준이 다소 과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그는 역사나 정치와 같이 의미에 연결해야 할 것들을 숫자에 결부한다. 그래서 그의 말은 때로 얕은 생각을 담은 것처럼 들린다. 그가 청와대 영빈관 기둥을 비판할 때에는 심지어 우스워 보이기도 했다. 조선 팔도를 상징하기 위해 영빈관 기둥을 8개로 했다는 이야기를 비판할 때 그는 "행정구역이 바뀌면 어쩌냐"며 "촌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대 그리스의 판테온처럼 돌기둥을 잘라 쌓지 않고 "한 덩어리로" 세운 통짜 기둥은 권위의 상징이라고 했다. 여기서 나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의아했다. 과거에 매몰된 이야기는 촌스럽다면서도, 마천루를 짓는 현대 건축기술을 두고 고대 그리스의 방식대로 돌을 잘라 쌓아야 한다는 건가? 유현준의 생각은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냥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면 좋았을 것을, 숫자를 들먹이다 보니 스텝이 꼬였다.
어제 라디오 인터뷰에서 유현준은 실언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두고 "신의 한 수"라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뷰가 좋아서"란다. 물론 과한 표현이었다고 꼬리를 내리기는 했다만, 나는 '그럴 줄 알았다' 싶었다. 그는 폐쇄적인 청와대 건물의 배치를 문제삼았다. 물리적인 시야가 막히고 길이 막히면 인간적인 소통도 막힐 것이라는 전제에 바탕을 뒀다. 그런 관점으로라면 박근혜의 7시간이 이해된다만, 역대 대통령 기자회견 횟수가 차이를 보이는 건 설명할 수 없다. 나아가 그는 서울이 확장함에 따라 서울의 중심이 경복궁에서 용산으로 옮겨갔다고 주장했다. 그 중심이 수학적 의미에서 중심인지, 경제학적 또는 사회학적 의미에서 중심인지 짧은 인터뷰로는 알 수가 없었다. 오히려 중심으로 이동하자는 생각이 모더니즘적 사고방식 아닌가? 그 이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인간 관계를 숫자에 연결하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여전히 오락가락이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곳이 아니라 외곽에 주택공급을 집중해서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고 하면서도, 정작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GTX 건설은 비판했다. 그의 유튜브에서 느끼던 자아분열 그대로였다.
현대 사회의 전문가는 자기 의견을 숫자로 분칠하는 데 탁월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지식을 열거한다고 지혜로운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때로는 지식을 말하기보다 입을 다물 때 현명한 사람이 된다. 전문가일수록 말하지 않아야 할 경계를 엄격히 세워야 한다. 한 분야의 전문가라도 다른 분야에서는 깊은 이야기를 꺼낼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통짜 기둥보다 더한 전문가라는 권위에 매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건축에 대해 말하는 유현준의 이야기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건축이라는 영역 밖을 내다보는 그의 시야는 넓지 않아 보인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의견이다. 비판 환영한다. 단, 인터뷰 전문과 유현준의 영상들을 보고 오시라.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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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3/17(목) 유현준 "이번에도 부동산 선거…인간 본능과 싸우지 말라"
https://www.cbs.co.kr/radio/pgm/board.asp?pn=read&skey=&sval=&anum=166905&vnum=12145&bgrp=6&page=&bcd=007C059C&pgm=1378&mcd=BOARD2
유튜브 셜록현준
https://www.youtube.com/channel/UC7uDyFIqExDnfXAIZqumFr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