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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Mar 21. 2022

범죄가 유능하다는 착각

범죄는 상식으로 알아본다. 합법이어도 범죄같은 짓들이 있고, 불법이어도 상식선에서 이해할 만한 일들이 있다. 이를테면 나치의 유대인 차별은 합법이었지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빈곤으로 절도에 내몰린 장 발장에게 많은 사람들이 동정하는 것과 대조된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면 상식을 배운다. 누가 가르쳐주는 건 아니지만, 과거의 여러 사례들을 기억해 현재의 사안을 평가하는 데 참고하는 적당한 기준이 바로 상식이다.


상식은 사람들에게 ‘어, 이러면 안 될 것 같은데’ 하는 느낌을 준다. 상식적인 사람은 세상에 불가능한 일이 있다는 전제 아래 삶을 살아간다.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범죄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범죄자는 그 느낌을 느끼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그럼으로써 ‘세상에 안 되는 일은 없다’는 전제 아래 살아간다. 그래서 범죄자에게는 범죄가 가능하다. 범죄는 금기를 느끼는 데 무능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짓이다.


상식으로 금기를 느끼는 능력은 다분히 감정적이다. 그래서 감정을 도외시한 사고방식만이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상식을 무시한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표현은, ‘일반인들의 상식에는 어긋나 보이겠지만 전문가들이 정교하게 만든 법이니 따르라’는 법조 엘리트들의 조소, 오만이 담긴 표현이다. 소크라테스의 권위를 무단으로 빌려온 건 덤이다. 상식은 전문가가 보지 못하는 일반인들의 사고방식을 담는다. 그래서 범죄와 범법 사이에는 틈새가 있다. 그 틈새 때문에 정치적 토론거리가 발생한다. 그 토론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이런 행위는 상식적으로 범죄인데 왜 법이 금지하지 않느냐?’ 또는 ‘이런 행위는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상식선에서 해도 되는 것 아니냐?’


문제는 대부분의 혁신이 상식적인 금기를 뛰어넘는다는  있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서비스는 언제나 ‘그래도 ?’ 하는 걱정과 우려를 받는다. 지구가 둥글다며 먼바다로 떠난 사람들이 없었다면 대항해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미군이 군용으로 사용하던 인트라넷을 공개하지 않았다면 인터넷은 없었을 것이다. 세계는 믿음의 총체다. 상식이라는 일반적인 믿음 혹은 편견을 깨야 세계가 바뀐다. 수많은 혁신들이 범죄로 오인되는 이유다. 혁신은 과거의 상식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상식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혁명과 유사하다. 혁명은 법체계의 총체인 국가 무너뜨리고 새로운 법체계를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패한 혁명이 범법으로 처벌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패한 혁신은 범죄처럼 평가받는다. 나는 타다의 사례가 이런 시각에 부합한다고 본다.


상식과 혁신의 갈등으로 이익을 보는 건 범죄자들이다. 범죄자들은 상식에 어긋나는 짓을 혁신으로 포장한다. 행동력이 빠르다는 인상,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인상을 대중에 보여줌으로써 혁신처럼 흉내 낸다. 혁신을 흉내 내는 범죄자들이 대부분 하는 말은 “법이 혁신을 막고 있다”는 불평이다. 그러나 혁신과 범죄의 결정적인 차이는 새로운 상식을 형성하느냐, 형성하지 못하느냐에 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과 같이,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혁신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엔론이나 테라노스의 범죄는 세계를 바꾸지 못했다.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범죄가 일정 기간 지속할 수 있었던 건 혁신을 흉내 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싸게, 빠르게,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고 공수표를 날렸기 때문이다. 범죄는 혁신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만,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상식을 안정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범죄가 유능해 보이는 착시가 생긴다. 혁신이 초기에는 범죄로 오해된다는 점과, 일부 범죄들이 일처리를 혁신적으로 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점이 섞여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범죄가 세상을 망치고 있다. 처벌을 통해 범죄를 몰아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범죄가 단지 누군가의 이익을 침해하므로 처벌받아 마땅하다기보다, 사람들에게 틀린 믿음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이 세계에 발붙이게 해서는 안 된다. 그 믿음은 ‘유능한 범죄가 무능한 합법보다 낫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도대체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개소리에 가깝다. 먼저, 범죄는 무능하다.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무능, 역사와 전통으로 형성된 금기를 느끼지 못하는 무능이 범죄를 만든다. 다른 한편으로, 합법은 유능하다. 국가라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능력, 대강 미래를 예상해 볼 수 있는 능력이 합법에 있다. 그런데 범죄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볼 수 없다. 상식선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버젓이 활보하는 걸 보고, 사람들은 ‘그 범죄가 혹시 혁신이었던 건 아닐까?’ 하고 고민하게 되기 때문이다.


혁신가라 자처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범죄가 아닌지 끊임없이 반성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상식선에서 타인의 행위를 평가하는 우리들은 혁신을 범죄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범죄를 처벌해야 혁신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처벌은 법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선거를 통한 배제나 통렬한 비판도 정치적으로는 처벌이 될 수 있다. 청와대를 옮기느냐 마느냐를 법으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투표로 결정할 일이다. 조폭 행동대장과 혁신적인 행정가를 엄격히 구분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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