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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May 11. 2022

신뢰를 깨뜨린 죄

한동훈과 그 딸의 진짜 잘못

한동훈과  딸을 향한 세간의 비판은 헛다리를 짚고 있다.


입시를 위해 스펙을 쌓은 게 문제는 아니다. 운이 좋아서 배알 꼴리는 것도 아니다. 대학 입시에서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은 일이 없다.


진짜 문제는, 이런 미꾸라지들을 그대로 봐주면 세상에 신뢰가 사라진다는 거다.


대학에 그런 제도가 생긴 건, 어린 나이부터 문제를 발견하고 사회에 기여하려는 노력을 해온 인재들을 뽑겠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위대한 일을 성취한 자에게 사회적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거다. 그런데 내용 없이 겉모습만 꾸민 스펙이 범람하면 그런 인재들은 사라지게 된다.


한동훈의 딸이 초등생 시절 설립했다는 기후위기 동아리는, 미래에 대한민국의 기후변화 문제를 지적할 환경 운동가를 죽인 셈이다. 그런 업적을 쌓은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의심부터 하고 볼 테니 말이다. 출세를 목적으로 동료 시민이 적대적인 조건 아래 활동하도록 방조한 것, 그것이 한 씨 일가의 죄다. 그 딸이 중학 시절에 설립했다는 봉사단체는 미래의 사회복지사를, 언론사는 미래의 언론인을 너무나 힘든 상황에 빠뜨렸다. 고교 시절에 썼다는 논문으로는, 학문에 정진하는 사람들을 욕보였다. 대학에 갔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경쟁과 생존이라는 키워드로 이 문제를 보는 시각은 아니올시다다. 오늘 라디오에서는 어떤 얼빠진 사람이 이런 식의 말을 했다. ‘한국 대학이 아니라 미국 대학을 준비했기 때문에 한국 학생의 티켓을 뺏지 않았다.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삶의 모든 활동을 자리싸움으로 볼 때에나 가능한 천박한 생각이다. 한 씨의 논리도 이와 유사하다.


한 씨 일가 같은 자들을 놔두면 세상에 신뢰는 없다. 신뢰가 없으면 위대한 업적도, 신화도 없다. 그저 그런 사람들 중에 시험문제 한두 개 더 맞춘 걸로 제가 신이라도 되는 듯이 우쭐대는 사람들만 늘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런 사회에 사는지도 모른다. 개천에서 용이 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용도 이무기처럼 대할 뿐인 세상을 만들었다는 게 끔찍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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