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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Sep 22. 2022

드러난 것이 있는 것이다

왜 일한 건 티 내야 할까 3

왜 일한 건 티 내야 할까? 답은 아주 간단하다. 티 내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이다. 일꾼과 말꾼의 차이는 마음과 행위의 차이와 같다. 다시 말해 일하기와 말하기 사이의 경계는 속마음과 드러내기 사이의 경계와 같다. 우리는 마음과 행위 사이에 그어진 경계와 비슷하게, 일하기와 말하기 사이에 경계를 그어볼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결코   없다.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이심전심이라는 말도  사람의 표정이나 몸짓, 맥락을 통해 그의 마음을 유추할 뿐이거나 우연한 행동이 알고 보니 같은 의도였다고 믿게 되는 경우에만 해당한다.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는 능력은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가능하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려줄 방법은 말과 몸짓뿐이다.


속마음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타인에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속마음은 나만 아는 마음이다. 다른 사람이 속마음을 알면 이미 그건 속마음이 아니게 된다. 그런데 타인이 나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내가 나의 속마음을 말이나 몸짓으로 드러낸다 하더라도, 내가 속마음 아닌 다른 무언가로 속마음을 드러낸 그 순간 그건 속마음이 아니라 행위가 된다. 속마음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생각, 즉 행위 없는 생각이다. 그래서 속마음은 완전한 비밀의 영역에 놓여 있다.


더군다나 사람은 마음과 다른 말 혹은 다른 몸짓으로 자기 자신의 속마음을 감출 수 있다. 사람의 말과 몸짓은 속마음을 드러내기도 가리기도 한다. 우리는 마음과 다른 말이나 몸짓을 거짓말이라거나 속임수라 일컫는다. 거짓말과 속임수가 선한지 악한지는 나중에 논의하기로 하자. 다만 사람은 바로 그 능력 때문에 스스로를 자유로운 존재로 여긴다. 사람의 말과 몸짓이 언제나 그의 속내를 투명하게 드러낸다면, 사람은 결코 자유를 누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은 말과 몸짓 덕분에 사람의 속마음은 은폐된다. 그래서 자유로운 개인의 속마음은 언제나 비밀스럽다.


그렇다면 속마음을 드러내는 일은 일한 것을  내는 어떻게 비슷한가? 속마음과 일은 아주 비슷해질 때가 있다. 바로 내가 일한 것을 아무도 보지 않았을 때이다. 세상에  어떤 일이라도 아무도 보지 못한 상태라면, 다른 누군가에게 알려지지 않은 상태라면 속마음과 다를  없다. 아무도 모른  나만 알고 있는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비밀스럽다. 아무도 없이 홀로 있는 상황, 혹은 여럿이 있더라도 나만 아는 무언가가 있는 상황, 우리는 그런 상황을 고독이라 부른다.


고독한 상황을 한번 생각해보자. 아무도 없는 방에 탁자가 놓여있다. 탁자 위에는 소박한 접시에 먹음직스러운 사과가 하나 놓여있다. 만일 내가 그 사과를 먹는다면 어떻게 될까? 사과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빼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단지 사과 하나가 부서지고 으깨져서 내 몸속에 들어올 뿐이다. 나와 사과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은 변함없이 똑같다. 내가 사과를 먹는 행동이 아무에게도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가 사과를 먹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고독한 내가 사과를 먹은 일은 사람들에게 드러나기 전까지 완벽한 비밀이다.


아무에게도 드러나지 않은 일은 없는 것과 같다. 아무도 없는 방 안의 사과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나의 속마음이나 아무도 찾지 않는 숲 속의 나무, 오래된 옷장 속에 놓아두고 잊어버린 책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다. 드러나지 않는 것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느낄 수 있다. 물론 어떤 것을 느낄 수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존재는 느낌에 의존한다. 느껴지지 않는 것의 존재는 언제나 의심받는다. 우리가 방 안의 사과를, 숲 속의 나무를, 옷장 속의 책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세계에서 사라진다.


단 한 사람에게만 드러난 일은 비밀이 된다. 나의 속마음을 나만 아는 것처럼, 만일 그 사과와 나무와 책이 고독한 나에게만 드러났다면, 그것들의 존재는 전적으로 내게 달려 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 비밀을 전하기 전까지 사과와 나무와 책은 없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게 된다. 내가 그 비밀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과 몸짓으로 전달하는 순간 비로소 그것들은 있는 것이 된다. 내가 어떤 것을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전혀 말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 생각이 있는 줄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무리 뛰어난 발명품을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연구노트에만 써두고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는다거나 특허를 내지 않으면, 그 발명품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2보다 큰 정수 중에 x^n+y^n=z^n을 만족하는 수는 없다’는 정리를 증명할 기가 막힌 방법을 알아냈지만 여백이 좁아 책에 남기지 않은 페르마는 그 정리를 증명하지 못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물론 우리는 페르마가 기가 막히게 증명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건 페르마의 과거 행위를 보고 우리가 그의 됨됨이를 판단한 결과다. 드러냄과 됨됨이의 관계는 나중에 살펴보기로 하자. 여기서 중요한 건, 인간의 세계에서 드러냄은 존재와 아주 깊은 연관을 갖는다는 점이다.


내가 한 일은 티 내지 않으면 사라진다. 겉으로 내보이지 않은 속마음을 아무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의 속마음은 아주 비밀스러워서 내가 일부러 드러내지 않는 한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아무에게도 드러나지 않은 것, 아무도 모르는 것은 세상에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도 모르게 한 일은 나에게만 드러난 일이다. 내가 한 일을 드러내지 않으면 아무도 알 길이 없다. 드러나지 않은 일은 없는 일과 같다. 어떤 일이라도 드러내지 않으면 그 일은 세계에서 사라진다.


직장인의 철학 ─ 왜 일한 건 티 내야 할까

1화 일꾼과 말꾼

2화 직장을 다니는 철학자들에게

3화 드러난 것이 있는 것이다 (방금 읽은 글)

4화 우리가 사는 세계

5화 사내정치를 위한 변명

6화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 정치인이다

7화 보이지 않아 사라지는 것들

8화 가장 어두운 범죄

9화 있어 보이는 비밀

이전 02화 직장을 다니는 철학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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